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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근 Apr 02. 2022

충분히 슬퍼하려 합니다

슬픔을 마주하는 이에게

오늘 당신의 기분은 어떤가요. 창밖엔 어제까지만 해도 회색빛으로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조금씩 개어 푸르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날씨도 개인 만큼 오늘은 그대의 기분에 산뜻한 봄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참 좋겠지만, 부끄럽게도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문득 찾아오는 불가피한 슬픈 감정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다양한 곳에서 이런 슬픔과 마주하지만, 이를 어떻게 대하는지에는 각자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이런 부분에서 미숙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방향성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슬픔을 똑바로 들여다보기 위한 시도를 글로 풀어내 보려 합니다.



슬픔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특정할 순 없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슬픔이고, 두 번째는 나의 상황을 바라보며 오는 슬픔입니다. 당신의 감정을 제가 직접 느낄 순 없기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 수 있지만 저의 마음에 빗대어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타인과의 인연에서 오는 슬픔은 어쩌면 제가 묵묵하게 흘려보냄에 익숙하지 않아 유독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은 필연적인 것이고, 언젠간 끝이 있을 걸 알기에 인연은 더 아름답다 이야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헤어짐 뿐만이 아니라, 인연의 실상이 제가 원하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도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로부터 오는 슬픔은 당신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같은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누군가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반면, 누군가는 저처럼 쉬이 흘려보내지 못하고 슬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전자같이 단단하고 어떤 사소함에 얽매이기보단 발전을 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저에게 말하길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고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혹시 당신도 저와 같다면, 이처럼 두 번 슬퍼할 일은 없길 바랍니다. 슬퍼하더라도 슬퍼하는 날 보고 다시 슬퍼하면 끝이 없기에, 똑바로 마주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취미를 갖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납니다. 스트레스와 슬픔이 완벽히 같은 건 아니겠지만, 많은 분들이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멜로디와 가사에 빠져 찬찬히 흘려보내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그 온기에 천천히 녹여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악기를 다룬다던지, 운동을 한다던지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당신은 어떨지 궁금하지만 저의 이야기를 해 보자면, 저는 이런 여러 가지 방법 모두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한다기엔 이상하지만 특히 자주 하는 일은 강가에 산책을 나가 그저 걷는 것입니다. 제 마음과는 다르게 어제와 같이 고요하고, 다른 사람들도 지나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 잔잔한 위로와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외출하고 돌아와 대충 던져 놓은 겉옷마냥 방구석에서 널브러져 있는 것 보단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취미를 가진다던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다던지 하는 방법이 있는 건 좋은 일일 것입니다. 음식도 불에 올린 채로 너무 오래 두면 타 버리듯이, 슬픔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 보면 우리의 마음에도 그을음이 남기 때문에 늦기 전에 딛고 일어서야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충분히 슬퍼하려 합니다. 어쩌면 이 글도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에 슬픔을 마주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이 진심이었고, 결과는 그 진심에 완벽하게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잔인하게도 당신의 슬픔과는 관계없이,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아름다운 진심을 기억하기 위해, 다음에 슬픔이 다시 찾아왔을 때 지금처럼 흔들리지는 않기 위해 저는 충분히 슬퍼하려 합니다.


저의 상황이 절 슬프게 하여도 그것은 제가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 때문인 걸 알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슬프기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제가 상대방을 생각하고 진심을 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슬프다고 해도, 그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지금의 슬픔이 아프더라도, 슬픔을 마주하기까지의 진심은 분명 그만큼 빛났을 것이기에 흘려보내기 전에 먼저 충분히 슬퍼하고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지만, 다시 마주쳤을 때 웃진 못하더라도 그때와는 다른 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또한 우리의 아름다운 진심은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되짚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레스팅을 거치며 육즙이 고기에 스며들듯이, 뜸을 들이며 밥이 맛있어지듯이 슬픔도 시간을 두고 충분히 슬퍼하며 곱씹으면 우리도 스며들듯 나아져 있지 않을까요.



저도 때로는 과하게 슬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저란 사람이 이런 것을 어쩌겠습니까. 안 어울리게 휙휙 슬픔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고, 이 감정이 탈 때 까지 내버려두지만 않고 충분히 뜸을 들인 다음 딛고 일어나려 노력하겠습니다. 슬퍼할 줄 아는 것도 분명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도 슬픔에 빠질 때가 오면 너무 깊이 빠져들지만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난 다음엔 더 나은 당신이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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