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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Aug 15. 2023

이끼를 키우며

생명이 있는것들은 다 정성이 필요하다.

이끼를 키우며 라고 말해놓고 보니 과연 이끼를 키울 수 있는 걸까? 이끼를 키운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보통 식물이나 나무를, 사람도 자식도 키운다고 한다. 양지 바른곳에 나무를 심고 화분을 옮긴다 조금이라도 같이 더 잘 드는 곳으로 방향을 틀고 꼬박꼬박 물을 준다. 모든 식물은 태양과 물과 바람이 필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반면 이끼는 음지 식물이다. 그루터기 아래 바위 및 나무밑동 눅눅하고 축축하고 물로 젖어 있는 곳에서 자란다. 이끼는 누가 태양을 향하여 방향을 틀어주지 않아도 자란다. 아니 자란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 태양과 관심이 없어도 눅눅하고 축축한 음의 기운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특별이 햇빛을 향하여 방향을 바꿔 주지 않아도 살기 때문에 이끼는 키운다고 안 한다. 그래서 꽃시장이나 화훼단지를 가서도 이씨를 사오진 않는다. 이끼는 그저 다른 식물의 장식품 이거나 주변에 떨궈서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얼마전 꽃 시장에 갔다가 이끼를 사왔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이끼 자체를 단독으로 샀다. 그리고는 다른 땅 위단에 대충 덮었다. 덮어 놓고 보니 이것도 생명인지라 잘 살려야겠다 잘 보살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끼를 잘 보살피려고 하니 양지에 사는 식물 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물이 마르지 않게 늘 축축하게 유지해줘야 하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손으로 만져 보면서 물을 주게 된다. 물이 또 너무 많으면 썩기 때문에 적당히 줘야 한다. 바람도 통 해야 한다. 햇빛이 든다고 해서 이끼가 죽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매일 조금씩 눅눅할 정도의 물을 주며 살펴봐야 한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끼를 키우며 라는 표현을 쓸 만도 하다.


음지에 있는 것들은 누군가의 그늘에서, 남의 처마 밑에서, 커다란 바위 틈새, 둥지 아래서 기생 하듯이 고개 숙여 살아 가는 줄 알았다. 음지에 있는 것들은 큰 것 높은 것 드높이 차오른 나무와 언덕에 감사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축축한 땅을 제공해준 다른 생명체들에 달라붙어 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특별이 보살피거나 키워야 하는 존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러나 이끼를 키워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남의 둥지 아래, 커다란 나무의 그늘 밑에서 살아갈지라도 보살핌은 필요하다. 자라는 것 같지 않아도 필요한 만큼의 정성이 든다. 이끼 조차 아무도 찾지 않는 눅눅하고 습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 음지에 있다고 하여 그것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뭐라 말을 하지 않아도 다 누군가의 정성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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