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사람 Aug 26. 2023

나의 테니스클럽 좌절기

좋아하는건 돈내고 해야.

어제 또 테니스클럽 가입을 거절 당했다. 아직 손가락에 꼽을 수 있으니 열번은 안 넘은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 삼청동 인근 테니스클럽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거절 당했다. 누구나 대환영이라고 하길래 호기롭게 들어가서 정말 편하게 쳤다. 그날은 다음에 꼭 나오세요, 하고 친절하게 인사하며 보내더니 다음날 거절문자를 받았다. 마치 회사면접에선 용기도 주고 격려하더니 다음날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에 너무나 무미건조한 문자로 거절 당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다시 볼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냥 얼굴 보고 그 자리에서 미안하지만 .. 하며 진심을 얘기해주면 안되었을까? 한동안 슬픔과 좌절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더랬다.


어제는 우리 동네의 테니스 클럽에서도 거절 당했다. 내가 기웃거리기 전부터 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클럽이라고 들었다. 선수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클럽천막 쪽으로 뻘쭘하게 다가가 인사하는데까지도 사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번엔 그래도 첫날 치고, 다음날도 와보라고 했다. 둘째날 좀 쳐보고 실력이 안 된다고 기존 멤버들이 같이 치기 어렵겠다고 말했다. 클럽 멤버들이 다 수십년 쳐왔다는걸 넌지시 강조도 한다. 그래도 이 클럽은 당일 얼굴 보면서 솔직히 얘기해줘서 감사했다.


테니스 네트는 1미터도 안되는데 클럽 가입의 벽은 이토록 높다.


테니스 클럽들이 기존멤버의 전원 일치 형태로 의견을 모아 신규 회원 가입을 결정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좁은 땅에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테니스 구장이 절대적으로 적고 치려는 사람들은 꾸준히 정기적으로 치면서 수준을 유지해야 하니 수준되는 사람들끼리 클럽을 유지하게 된거 같다. 한국에서 테니스는 이 클럽이나 저 클럽이나 대부분 그런 시스템으로 유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나의 실력이 모자라서 그렇다는 걸 누구를 탓하겠는가. 돌아와 또 술 한 잔 했다.


언젠간 어떤 클럽에든 들어갈 수나 있을까? 살다 보면 그것이 어떤 집단 이건 들어가는 게 참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클럽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정도로 잘하지 못하는게 문제다. 결국 이분야에선 내가 좋아하는 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노력이 실력으로 전이되지 않는 것처럼, 애정도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것 같다. 어떤 것은 별 노력없이도 잘하는게 있는가 하면, 어떤건 노오오력해도 그만큼 잘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읽은 책 ‘계속 합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라는 책이 떠오른다. 저자는 검도를 수년간 했던 이야기를 쓴다. 수년간 하면서도 그녀는 매번 맞았다고 한다. 한번도 상대를 가격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그녀는 계속 한다. 그의 글이 위안이 된다.


훗날 내가 생을 마감할 때 순간 떠오를 무수한 찬란한 것들 중 적어도 테니스를 생각하면 빙긋이 미소 지으며 눈감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 40대도 훨씬 넘어서 삭신이 쑤실 무렵 테니스 라는 운동을 알게 된 걸 어쩌란 말인가.


이번 생에서 유일하게 후회가 되는 것, 벌써 후회가 되는 것은 테니스를 좀 더 빨리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평생 운동이나 몸쓰는 것엔 자존감 제로였던 내게 좋아하는 운동이 있다는걸 알았으니 그걸로 됬다. 이유없이 설레는게 있다는걸 알았으니 좋다. 그런것도 모르고 눈을 감으면 얼마나 아쉬울까.


그래. 나도 한 번도 이기지 못할 지언정 하자. 어느 클럽에서도 오라고 하지 않더라도 계속 하자. 테니스가 좋은 것이지 테니스클럽에 들어가는 게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 코치님 부여잡고 계속 하자.


그래. 내가 좋아하는 건 돈 주고 하는거다.



작가의 이전글 이끼를 키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