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사람 Apr 19. 2024

현관앞 두릅 두 박스

돈한푼 없이도 작은 보살핌으로 행복 가득


출장을 갔다가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퇴근하니 현관문 앞에 두릅 박스 두개가 와 있었다. 크기도 같고 보낸이도 원주이고, 내용물도 두릅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침에 첫째 고모가 두릅이 너무 싱싱하다며 앞마당에 나있는 두릅을 따서 보내준다고 전화왔던 생각이 났다. 박스 하나에는 두릅 한 무덩이가 신문지에 곱게 쌓여져 있었다. 그런데 두번째 박스는 뭐지? 열어보니 여기엔 두릅이 비닐에 쌓여져 있었고 크기도 약간 달랐다. 보낸이는 막내 고모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막내고모네도 밭에 갔다가 직접 딴 두릅이 너무 좋아 남편한테 전화해 보냈다고 한다.


같은 날, 시댁 식구들이 약속한것도 아닌데 두릅을 두 집에서 보내주다니...


저녁식사로 두릅 한상차림을 했다^^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좋은 사람들도 있구나. 이분들은 좋은 게 보이면 서울 사는 막내네도 주어야지 하며 보내신다. 맛있는걸 먹으면 서울 사는 막내네도 먹어보라고 해야지 하며 보내신다. 막내네만 서울에서 힘들게 산다고 늘 마음 쓰신다. 남편의 형제가 6남매라 고모들만 네분인데, 고모들이 돌아가면서 보내기도 하고 어떨땐 형님이 보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예전 아주 어릴때 국어 책에 나온 달밤에 쌀가마(볓단)를 서로 옮겨놓는 형제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렵게 쌀가마가 생기자 형은 아우가 어려울까 하여 밤에 몰래 갖다놓고, 아우는 또 형님네가 더 어렵겠지 하고 몰래 쌀가마를 갖다놓는다. 결국 쌤쌤인데, 어린 마음에 읽었을 때는 형제가 좀 바보같으면서도 황당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했다. 충남 예산에 형제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의좋은 형제 공원"도 있다고 하니 실제 이야기가 맞긴 한가보다.


형님, 아우, 의좋은 형제

https://m.blog.naver.com/gamrae007/223301492771?view=img_1


그시절 동화를 읽던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접하는 상황은 어려서 읽었던동화는 전혀 달랐다.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하고, 내가 손해보는 일은 안하려고 한다. 남의 공을 빼았고, 나의 일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쉽게 잊히고, 협력해야 할 상황이 갑자기 경쟁상황이 되어버린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인지, 원래 인간이 각박했던 것인지, 마음은 편치 않다.


오늘 두릅 두박스를 보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형제 이야기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하루, 퇴근할 무렵에 받은 두릅이 마음에 희망을 준다. 타향 서울에서 어찌어찌 부비대는 우리 식구들 생각해주는 가족들이 있다는걸 상기시켜준다. 혹시 나는 먼저 주기 전에 먼저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에게 두릅 한박스 같은 사람이 되고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불편부당한 선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