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게임을 하면서 성실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살아왔던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된다.
테니스를 할 때 나는 정직하게 직선으로 강하게 스트로크를 때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스트로크를 선호하는게 아니라 아직 다른 기술이 없어서가 더 정확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약간의 페인트 모션처럼 강하게 칠 것 같다가 약하게 치고 오른쪽으로 칠 것 같다가 왼쪽으로 치고 높이 띄울 것 같다가 낮게 보낸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고 기분이 살짝 상했다가 그 다음엔 참 기술이 좋다 하고 감탄한다. 상대방은 그런 기술로 득점한다.
프로 세계에서 여러 기술을 잘 모를 때 처음에는 그런 걸 기술인지 술수인지 뭐라고 표현해야될지 알기 어렵기 쉽상이다. 잔기술로 보이는 그런 기술이 꼭 반칙이거나 불법은 아니다. 경험 많은 선수 일수록 게임을 다양하게 이끌 수록 반칙이 아니면서 자기의 득점 포인트로 활용할 여러 가지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허를 찌르고 상대가 오른쪽을 기대할 때 왼쪽으로 보내고 상대가 높은 공을 기대할때 낮은 공을 보내는 것이다. 프로는 반칙이 아닌 선에서 적당한 기술을 써야한다.
지저분하게 치는 것도 기술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어떤 테니스 매니아 정치인이 한번은 복식 게임을 하다가 졌더랬다. 파트너는 자기가 실력이 모자라서 진것 같아 어쩔줄 모르고 휴게실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문앞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아까 2세트에서 써브를 더 강하게 넣었어야 하나? 방향을 더 넓게 틀었어야 하나? 하면서 지난 게임을 복기하고 있었다. 부단히 선출 코치에게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연마해왔는데 아직도 부족하네..하며 자책하고 있었더랬다. 밥시간이 되어 테니스 코트 근처 허름한 기사식당에 가서 백반을 시켜놓고는 그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좀 지저분하게 쳐 봐"
좀 지저분하게 쳐 봐
말인즉슨, 정직하게 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실력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그 세계에서는 다양한 속임수와 잔 기술과 상대를 짜증나게 만드는 플레이도 구사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정직함과 기술은 같은 차원이 아니다.
사실 나는 정직하게 내가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면 그것이 곧 기술로 이어질 줄 알았다. 즉 정직하게 세게 치고 내가 오른쪽으로 정직하게 치면 오른쪽으로 나가고 내가 높이 치면 높이 나가는 건 그것이 정직한 공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기준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와 파트너들의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기술 테크닉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아니 관점을 바꾸기 시작한다.
정직하게 힘만 들이는 플레이는 상대방도 나의 수를 투명하게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승점을 얻기가 어렵다. 오히려 상대방은 나의 뻔한 플레이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승점을 얻얻어간다. 나는 정직하게 쳤는데, 잔 기술로 되받다니... 하는 허탈함은 루저의 변명에 불과하다. 내가 아직 그런 기술을 구사 할 줄도 모르고 그런 기술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잘 모른다고 해서 그런 기술의 세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직하게 쳤는데 잔기술로 되받다니 ㅠㅠ...
따라서 정직하면 기술을 쓰지 않는다는 말은 지나친 왜곡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술수와 페인트 모션과 약간의 속임수을 쓰는 것이 정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선수가 잔기술, 페인트 모션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테크닉을 구사한다고 하여 그가 정직 하지 않게 게임을 하는 게 결코 아니다.
플레이어는 코트 경기장 안에서 자신에게 허용 되는 다양한 기술과 테크닉을 활용해 최대한 자신의 기술을 구사 하고 있을 뿐이다. 반칙은 아니면서 동시에 단순한 실력을 넘어선 기술을 익히는 것도 다 능력이다. 이런 기술들도 다 본인이 매일 4시간 땀흘리며 정직하게 연습하여 얻은 것들이다. 즉 그런 기술도 그의 정직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회사 생활도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정직함과 기술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이자 미덕 같다. 정직함이 도덕적 차원이라면, 기술은 실용적 테크닉 차원이다. 실력을 쌓는 것이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쌓되 실력만큼 나오는 것이라면, 기술은 여기에 창의성을 더해야 하는 것 같다. 단지 정직하게 실력을 쌓았다고해서 기술이 발현되는 것 같진 않다.
특히 나를 비롯한 여성들은 술수와 지름길을 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게 여성 고유의 속성인지도 모르겠고, 혹자는 이것을 가지고 여성이 정직하고 투명하다고 한다. 여성이 일반적으로 정직하니 남자들보다 부패에 빠질 위험이 적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사회 멤버나 회사의 고위직에 여자가 많을수록 회사의 투명도가 올라간다는 통계를 보여준다. 한편으론 여자로서 칭찬을 받는다는 생각에 으쓱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지금도 회사나 조직의 상부 고위직은 대부분 남자이다. 남자가 많은 조직이 일반적으로 더 부패하거나 문제가 많은지는 통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여자가 정직하다고 칭찬하는 것이 입발린 소리처럼 공허하듯이, 남자가 부패에 빠지기 쉽다고 말하는 것 역시 통쾌하게 들리지만 의미 없다. 부패에 빠지기 쉽거나 말거나 어차피 대부분의 회사와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남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자들은 어려서부터 게임과 스포츠를 자주 접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직함과 술수 사이에서 이분법적으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술수를 쓰고 약간의 지름길로 더 간단한 방법으로 뭔가를 처리 하면 왠지 정직하지 않은 것 같고 왠지 성실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쉬운 길, 빠른 길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직하지 않은 방법이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 하면서 굳이 더 멀고 더 오직 한 길로 가려 한다. 그러면 성실한 것은 확실히 보장 되지만 더 효율적이고 더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 할 수 없다. 동시에 반대쪽에서 그러한 테크닉을 구사 하는 상대편을 마치 정직하지 않은 것인양 비난 하기 쉽다. 결정적으로 나만 정직한 방법이라고 우둔하게 고집하다가 약삭빠르고 잔기술을 구사하는 플레이어에게 기회를 놓치기 쉽다.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술수와 테크닉, 지름길을 잘 찾는 것도 다 그의 노력의 결과다. 나 역시 그런 다양한 테크닉에 익숙해져야 하고 연마할 필요가 있다. 정직하게 사는것이 곧 빠른 길로 가는걸 배제하는게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