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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문 Jun 19. 2024

지하철에서

캐나다 일상



마약에 푹 찌든 냄새, 덜덜 떠는 주름진 손. 희끗희끗한 하얀 머리. 늙고 얇고 흰, 회비의 피부. 차갑고 더러운 지하철 바닥에 더 더러워 보이는 이상한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는 한 사람. 흔한 캐나다 지하철 노숙자다.


같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있으면서도, 깔끔한 옷을 입은 사회인들과 다른 세계에 있는 거 같은 그런 사람. 지하철이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이 아닌 집이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그런 사람.


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그는 손에 마커를 쥐고 있었다. 빨간색과 검은색의 마커. 사람들을 다급하게 번갈아 보며 종이 상자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아주 열정적으로, 그리고 또 익숙하게.


'마약에 찌든 길거리 노숙자가 펜으로 박스에 뭘 하는 거지?'


'사람들을 그리는 걸까?'


'저렇게 열정적으로 무엇을 그리는 걸까?'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손은 확실히 예술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열정 가득한, 어린 미술가였던 나는 지하철에서도 미술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에 종이와 펜만 보면 그림 생각이 나 두근거리곤 했다.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눈에 너무 밟혔다. 그의 마약 냄새와 열정이 너무 반대돼서, 나와 다른 세계라서, 그의 미술이 더 궁금했다. 박스에 그려낸 빨강과 검정의 미술을 보고 싶었다. 내가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닐까 너무 아쉬웠다.


이상한 사람처럼 한참을 지하철 한복판에 서 있던 나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걸어갔다.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호기심이 이겼다. 발걸음은 마침내 노숙자의 앞에 멈췄다. 노숙자에게 선입견이 있어서일까, 때릴 수도, 끌려갈 수도, 욕을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용기를 냈다. 망설이던 나는 입을 떼었다.


“What are you drawing? (뭘 그리고 있나요?)”


그는 나를 어린양을 보듯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는 예술가를 쳐다보는 듯한 두려움과 존경어인 내 눈빛을 마주쳤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말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못해 몇 번을 되묻고 답하였다.


“Im writing a help letter,,, I.. Im a homeless so person like u ass,,,,(나는 노숙자야. 너 같은 사람들에게 구걸하려고 이딴 '도와주세요' 하는 팻말을 만들고 있는 거야.”


나는 그가 보여 주는 나무판자를 보았다. 냄새나는 종이상자 위에 검정과 빨간 글씨로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들…. 그리고 글씨가 더 잘 보이게 몇 번이고 덧칠하고 꾸민 흔적들. 그곳엔 아주 명확하게 문구가 쓰여있었다.


"IM HOMELESS, PLEASE HELP ME (저는 노숙자입니다, 도와주세요)"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 그는 구걸하려고 문구를 적고 있었던 거구나.



아. 그의 세상은, 다 닳은 마커로 쓴 검정과 빨강의 미술은 그의 생계였고, 문구였다. 그의 문장이 왜인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im homeless, pleas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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