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팀을 떠나기로 하다.
말이 쉬웠지, 막상 떠나려고 하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5년 동안 해온 일에 노하우가 쌓이기도 했고, 내가 애정하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사유가 고작인간관계 때문이라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현 팀장이자 전 사수는, 신규 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어쩜 저렇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가 팀장이 되고 보니, 신규 보직자로서 그도 자기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그 하루 이틀이, 내가 팀 이동을 결심하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나는 팀 이동을 요청했고, 내 요청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전화를 받기 전 까지는.
특별할 것 없던 어느 저녁, 운동을 하던 중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전화를 다시 할 때까지 전화가 오지 않는데, 이 날은 달랐다.
전화벨은 내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핸드폰에는 "실장님" 세 글자가 떠 있었다. 본부장님이 나를 지금 당장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길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날까지 본부장님을 독대한 적이 없었다. 사실 본부장님 뿐만 아니라 팀장님을 제외한 누군가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는 그런 쪽에 능숙했던 적이 없다. 그런 쪽이라 함은, 조직 논리를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던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던지, 처세술이 좋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다. 머리 검은 한국인이 고작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저런 것들에 능숙하지 못했다고 말하기엔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인정하는 바다. 애초에도 어른들하고 지내는 게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나였으니.
그렇지만, 한국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을 보면, 이 시기에 많은 것을 배우고 몸에 익히는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남들이 4년 동안 치열하게 조직 내 생존력을 기르고 있을 때, 이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에서 내가 원하는 인맥만을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었으니, 그들보다 뒤처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이 없다.
본부장님은 대체 팀장과의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고, 내 살아온 배경에 대해 물었고, 내가 팀장이 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내가 팀장? 난 겨우 입사한 지 5년밖에 안된 대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5년 동안에도, 고과를 끝장나게 잘 받는다던지, 보고를 멋지게 한다던지 등 눈에 띄는 활동은 전무했다. 오히려, 그것과는 완전 반대였다.
나는 내 일을 애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고과를 낮게 받아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나는 내가 인정해 주면 되니까.더불어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모두가 반짝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 할 때, 나는 내가 부여한 일의 가치를 쫓았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해 둔 기초 공사 위에 더 큰 것이 지어지고 번창해 나가는 것을 즐겼다. 이런 나에게 팀장직 제안이라니.
그 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물론 팀장직을 맡기 위해서는 팀을 옮겨야 했고, 모든 일을 새로 배워야 했지만, 그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팀원들의 반발이 걱정되었다. 새로 팀을 옮긴 사람이 팀장이 된다고 하면 반발은 정해놓은 수순이다. 특히 제약회사의 여초집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팀장이 된다면 잘 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내 깜냥을 몰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