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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 Aug 10. 2024

마수콜

첫 콜에 대한 머피의 법칙

"첫 콜"이라는 말은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날 하루의 기운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고객이 친절하고 수월한 사람이라면, 나머지 시간도 대체로 순탄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온종일 무거운 분위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첫 콜은 단순한 시작을 넘어, 하루의 내 운명을 쥐고 흔들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여 자리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부디 순조로운 하루가 되기를...'이라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첫 콜의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오늘은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라고. 다른 콜센터 상담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 첫 콜은 항상 부담이었다. 서비스직으로 오래 일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수라는 단어가 미신처럼 나를 계속 쫓아다녔다. 


"안녕하세요, ㅇㅇㅇ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방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무언가에 짜증이 섞인 듯한 그 목소리는 이미 답답함과 불만이 가득한 사람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방금 오전 방송에서 봤는데, 식기 세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다고요? 제대로 설명이나 해줬나요? 구성 다시 이야기해 줘요. " 나는 상세설명창을 띄어서 구성을 말씀드렸다. "아니, 지금 이야기하기 싫어요? 너무 성의가 없는 거 아니에요? 그냥 담당자 바꿔요."



식기 구성에 대한 문의였다. 방송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구성을 묻는 건 흔한 일이다. 밥그릇, 국그릇, 접시, 종지 등등 여러 가지 품목이 포함되어 있었고, 나는 고객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 고객의 입장이란 다른 것을 바랐나 보다. 고객은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객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담당자를 바꾸라고 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년간 콜센터에서 일해왔지만, 첫 번째 고객이 이렇게 날카롭게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다시 설명하려 했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드렸다. 내 입장에서는 아침부터 담당자께 전화를 연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담당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최대한 내 입장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객은 끝까지 말을 끊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날카로운 톤은 마치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점점 더 긴장했다. 결국 고객의 요구대로 담당자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하루는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첫 번째 전화가 마치 도미노처럼 이어져, 이후에도 크고 작은 클레임들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오늘 하루는 클레임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는 운명이라도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콜센터 근무 날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하루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첫 콜이 주었던 긴장감과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경험은 불안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었지만, 사실 그 불안은 대부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처음 겪는 상황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안이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경험과 자신감이 쌓여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40세가 되어 돌이켜보면, 처음의 두려움이 얼마나 사소했던지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내가 살다가면서 자신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불안도 지나고, 이제는 그 경험이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첫 콜이 주었던 긴장과 불안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하는 경험은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새로운 시도는 도전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경험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공적인 첫 경험은 자신감과 열린 마음을 키우지만, 실패나 어려움은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도 중요한 교훈이 되어 나중에 더 나은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처음 하는 경험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형성하며, 삶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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