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3개의 제왕절개수술이 있었다. 첫번째 산모의 나이는 45세, 초고령 산모다. 두번째 산모는 41세, 쌍둥이를 임신한 고령 산모였다. 세번째 산모는 30대 초반이었지만 만성신장질환이 있었고 심한 임신중독증과 자궁내 태아 발육지연이 있는 고위험 산모였다.
특히 두 번째 수술이 힘들었다. 쌍둥이 아기들이 만삭까지 잘 자라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산모의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수술대에 누웠을 때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질 수 밖에 없었다. 네 명이서 하던 수술을 둘이서 하다보니 내가 팔의 힘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왼쪽 손으로 산모의 배를 잡고 오른손으로 피부를 절개하면서 제왕절개수술을 시작했다.
세 산모의 수술이 끝나고 혼자서 병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방으로 올라오니 오후 1시 반 정도가 되었다. 밀린 일을 하고 있는데 분만장에서 전화가 왔다. 분당의 한 종합병원에서 27주 조기양막파수 산모의 전원 문의였다. 초산모인데 경부길이가 짧다고 자궁경부봉합수술을 했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했을까? 이 경우는 수술보다 프로제스테론 약물 사용이 표준 치료다.) 다행히 신생아중환자실의 자리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전원을 받았다.
이후 30분도 되지 않아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또 전원 문의가 왔다. 이번에는 임신 33주, 태아가 구순구개열이 있고 조기양막파수된 산모였다. 출생 후 성형외과 진료와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마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보내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 5시, 내일이 휴일이기에 오늘 수술한 산모들의 저녁 회진을 돌기 위해 병실로 갔다. 또 전원 문의가 왔다. 이번에는 산후출혈 환자다. 로칼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 후 혈압이 떨어지고 있으며 복강내 출혈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개인병원 선생님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응급실로 빨리 보내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산후출혈 환자는 중증 중에 중증이다. 중환자의학과와 산과가 같이 하는 소위 'bloody business' 단톡방에 환자의 전원 사실을 알리고 응급실에 연락을 취했다. 산모 도착에 맞추어 초음파를 끌고 응급실로 내려갔다. 혈압이 잡히지 않는 창백한 산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오늘의 당직이 진정으로 순탄치 않음을 확신했다. 다행히 응급의학과에서 필요한 초기 응급 처치를 다 해주었다. 감사했다. 나는 초음파로 복강내 혈액의 양을 확인하고 수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결정했다.
저녁 6시 40분 마침 낮 당직과 방 당직 모든 의료진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우리는 7시 30분에 환자를 수술장으로 이동시켰다. 환자가 있던 응급실 소생실 자리에는 10개 이상의 수혈팩이 딩굴었다. 수술장에서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복강내 출혈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부인과 이유영 교수가 수퍼맨처럼 나타나서 우리를 도와주었다.
피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순간 산과 병실에서 전화가 왔다. 2일전 임신중독증으로 제왕절개수술을 한 내 산모가 다시 경기(발작)를 한다는 노티였다. 나는 수술 중 병실로 올라가 환자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산모는 다리를 연신 흔들어 댔지만 다행히 전신발작을 아니었기에 안심을 하고 신경과 당직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다시 수술장으로 와서 수술을 마무리했다. 결국 50개 이상의 피가 들어갔고 3명의 교수와 1명의 전임의가 함께 수술을 했으며 환자는 살았다. 분만장에 와서 식은 치킨을 저녁으로 먹은 시간은 10시 반이었다.
3시간의 긴 수술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분당의 개인 병원에서 임신 26주 5일의 조기양막파수 산모가 또 전원되어 왔다. 다행히 진통은 없었기에 진찰 후 고위험병실로 이동하여 잘 끌어보기로 하였다.
하루 동안 4명의 산모를 전원 받고 내가 당직실의 침대에 등을 댈 수 있던 시간은 새벽 4시 반이었다.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꼬구라졌다. 내일, 아니 오늘 아침 7시에 인계를 하고 8시 5분 SRT를 타고 대구 학회에 가야한다. 아침에 샤워하고 준비하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그 전까지 이젠 더 이상 일이 없어야 한다. 오늘 아침에 머리를 감았었어야 되는데 후회된다.
30분 정도 잠들었을까?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고위험병실로 보낸 26주 5일 산모가 허리를 아파한다는 것이었다. 모니터에서 수축은 그려지지 않고 진통의 간격을 띄지는 않았기에 허리 통증에 대해 진통제를 주라고 비몽사몽 알리고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 6시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 산모가 갑자기 아래로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진통이 걸린 것이었다. 1kg가 채 안되는 아기는 진행이 빠를 수 있기에 침대 체로 분만장으로 옮기라고 지시를 하고 당장 병실로 달려나갔다. 간호사와 같이 산모의 침대를 끌고 분만장 진통실로 옮겨 드랩을 할 틈도 없이 소독약을 산도에 붓고 작은 아기를 받았다. (결국 아기는 850gm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갑자기 진행하다니, 경험이 많은 나로서도 예외적인 일이 늘 발생하는 것이 분만장의 24시간이다. 아기는 다행히 출생 후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상태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이제 시간은 6시 10분, 태반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샤워를 하고 수서역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산모를 제대로 분만대에 옮기고 태반을 꺼냈다. 다행이 열상은 없어서 꼬맬 필요는 없었다. 10분 절약되었다. 6시 20분. 당직실에 가야 한다. 그 순간 구순구개열 산모가 진통이 강해졌다는 노티를 받았다. 진찰을 했다. 자궁문이 8 cm 정도가 열렸다. 진통의 후반이다. 힘든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무통을 맞을 수 있도록 마취과에 연락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마취과 당직의에게 부탁했고 고맙게도 올라와서 척수마취만이라도 해주기로 했다. 마취 후 다시 진찰을 했다. 다행이 내진 소견은 동일하여 급하게 진행될 상황은 아니다.
6시 40분, 7시부터 당직을 시작하는 전임의에게 조금 빨리 와줄 수 있는지 카톡을 보내고 당직실에 온 시간은 6시 47분이었다. 10분 만에 샤워를 하고 5분 동안 화장을 하고 젖은 머리로 암센터에 있는 교수실로 이동했다. 7시 10분. 내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에서 차에서 짐을 꺼내 택시 정류장에 적어도 7시 30분까지는 가야 한다.
산부인과 초음파학회 부회장이기 때문에 이 학회의 참석을 위해 대구를 가야 하는 것이다. 이 SRT를 놓치면 모든 일이 어그러진다. 나는 급한 마음에 분만장과 당직실이 있는 본관에서 내 방이 있는 암병원으로 빠른 걸음을 내디딜 수 밖에 없었다. 아뿔싸. 응급실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오른쪽 발이 바닥에 물기를 힘차게 디디며 삐긋했고 나는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원래 잘 넘어지고 발목도 잘 삐는 편이라서 늘 걸을 때 발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방심한 틈에 자빠진 것이다. 아파서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내가 자빠진 병원 복도 주변을 지나가는 보호자들 중 아무도 나를 일으켜 새워주지 않았다. 한 사람은 괜찮냐고 혼자말처럼 물어보면서 내가 얼굴을 들기도 전에 지나가 버렸다. 발목을 다치면 안 된다. 지금은 아플 수도 없는 비상 상황이다. 천천히 일어나 조심스럽게 발목을 움직여 봤다. 다행히 괜찮았다. 다만 넘어지지 않으려고 지탱한 왼손의 엄지 안쪽 혈관이 터져 부풀어 올랐다. 퍼렇게 변하는 손가락을 보니 웬지 서러웠다.
운 좋게 택시 정류장에 한 택시가 서 있었기에 5분의 시간이 절약되었다. SRT 역에 도착한 것은 7시 40분 정도였다. 아까는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 이젠 배가 고프다. 나의 위염을 달래기 위한 도너츠와 마음을 진정시켜줄 따뜻한 커피를 사서 8시 5분 차에 올랐다. 시간을 분 단위로 쓴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나의 내공은 어디까지 떨어져 나의 목 디스크를 어떻게 갉아먹을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