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여행을 준비할 때 뉴욕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었다. 뉴욕을 검색하면 뮤지컬 이야기가 꼭 나왔고 라이언킹의 무대 연출이 기가 막 히단 후기들을 보면서 궁금해지긴 했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자인 나에게 너무나 크게 느껴졌던 티켓 가격 때문에 여행 계획에 담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나의 뉴욕 여행 리스트에 없던 브로드웨이는 나의 여행에 천지개벽을 일으킨 새미 덕분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새미가 먼저 뮤지컬을 보자고 제안을 했다. 순순히 오케이를 외쳤지만 속으론 사실 심하게 갈등을 했다. 환율 계산 실패로 계획했던 여행 예산을 한참 초과했던 상황이라 그녀의 제안에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언제 뉴욕에 다시 올지 모르기에 나는 티켓을 질러버렸다.
새미가 선택한 뮤지컬은 Rock of age라는 작품이었는데 한국에 오고 나서야 매우 유명한 뮤지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언어의 장벽으로 공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채 공연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극과는 다르게 신나는 분위기와 에너지 넘치는 무대가 너무 인상 깊었다. 내 인생 첫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라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새미가 한국으로 떠난 후 무슨 여운이 남아서인지 뮤지컬을 한번 더 보기로 결심했다. 이미 예산 초과한 것 그냥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자고 결심했다. 새미와 했던 것처럼 TKTS 사이트에 들어가 공연 리스트를 봤는데 익숙한 포스터와 원스 Once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했던 영화 원스를 각색한 뮤지컬이라는 설명을 보고 과감하게 예매 버튼을 터치했다. 영화를 각색해서 뮤지컬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고 어떻게 표현이 될지 정말 궁금했다.
가장 저렴한 자리에 예매를 한 나는 맨 앞자리의 너무나 불친절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고개를 220도는 꺾어야 했고 무릎이 무대에 바로 닿아서 굉장히 협소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관작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리에 대한 고통은 공연이 시작되자 진통제를 맞은 듯 사라졌다. 먼저 영화로 봐서 노래와 내용들이 친숙해서 그런지 락 오브 에이지와 다르게 공연에 쉽게 몰입되었다. 스크린이 아니라 촉감과 냄새까지 표현한 것 같은 무대 세트를 느끼면서 듣는 노래는 역시 감동이 달랐다. 유명한 OST인 Falling Slowly가 나왔을 땐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공연장 분위기는 떼창 분위기는 아니어서 숨죽이며 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배역이 있었다. 영화에는 없었던 배역 같은데 주인공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무대에 나와 바이올린을 켰다. 그 배우는 조연으로 비중 있는 역은 아녔지만 공연 내내 이상하게 주인공들보다 눈이 갔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는데 열정이라는 단어로만 그녀를 표현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공연 내내 눈에 들어온 이 배우는 아니나 다를까 커튼콜을 할 때 유일하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오늘이 첫 공연인가? 아니면 마지막 공연인가? 실수를 했나? 연기자들의 무대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박수소리 속에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다 특별한 사연 없이 그냥 평범하게 매일 공연에 서는 연기자라면 참 멋진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만약 그런 삶을 살게 되면 하루하루가 감동일 것 같았는데 상상하던 모습을 그 배우가 하고 있었다. 남들이 알아주는 주연을 맡은 건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였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인이 되자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정말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녀처럼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지만 현실이라는 풍파에 타협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사는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 이후 연기 이력을 알 순 없지만 지금까지 예술적인 삶을 살고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