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봉 Jun 22. 2022

한국 공대생의 위엄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을 보면 의문이 생기곤 한다. 유소년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던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지만 정작 성인 무대에서 성과를 낸 선수들이 적기 때문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한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영재 청소년들은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을 하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 영특함을 잘 살리며 살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성인이 되면 꽃을 피우는 외국의 영재들을 보며 외국의 교육에 대해서 궁금했다.


루이스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었다. 아들 이름은 루카스였는데 중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150cm 대의 키와 삐쩍 마른 체격이었고 머리는 곱슬머리에 장발을 했다. 루카스는 질풍노도 시기에 접어든 듯했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외부인이 자기 집에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조금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그의 누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빅토리아? 이런 느낌이었다) 어느 친남매들처럼 그들은 매일 전쟁을 치렀다. 


사실 루카스는 엄마의 부재와 루이스의 방치(?) 때문에 아쉽게도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미국 영화에서 보던 불량학생의 기운이 느껴져서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는 루이스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안타까운 루카스였지만 의외로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는 꼬박꼬박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행을 갔다 와서 방으로 들어갈 때면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서 숙제를 하는 루카스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어김없이 테이블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루카스를 보게 되었는데 미국의 교과 과정이 궁금해서 루카스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루카스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문제들을 쭉 훑어보니 한국의 초등학교 수학 수준의 엄청 쉬운 문제였다. 루카스는 매우 느린 속도로 한 문제 한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아이폰 계산기를 이용해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역시 이 녀석 양아치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편으론 왜 학교 다닐 때 이 생각을 못 했을까란 순수했던 나 자신을 자책도 했다.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순진하게 왜 다 암산으로 풀었는지... 참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루카스를 비난했던 나 자신을 다시 자책했다. 교과서 문제를 읽어보니 “계산기를 사용해서 using a calculator”라는 문장이 있었다. 두 눈을 의심했는데 모든 문제에 저 문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루카스는 몰래 수학 문제를 계산기로 푸는 나쁜 학생이 아니라 문제에서 하라는 대로 했던 모범생이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미국에선 수학을 풀 때 계산기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실용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수학 교육에 대한 다른 접근이 신기했다. 하지만 루카스를 보면서니 미국의 수학 교육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사람의 뇌로 할 수 있는 수준의 계산도 기계를 이용해서 해야 하니 속도가 너무 더뎠고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루카스가 푸는 문제의 답을 먼저 말해 버렸다. 끙끙대며 계산한 계산기 화면에 내가 말한 답이 나오자 루카스는 동그랗게 뜨며 나를 봤다. 어떻게 한 거냐고 한 질문에 “my major is engineering(나 공대생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이라고 거만하게 대답했다. 다음 문제들도 내가 암산으로 먼저 문제를 풀어내자 루카스는 연신 “so fast!”, "absolutely"를 외쳐댔다. 루카스의 숙제를 조금(?) 도와주면서 한국의 브레인의 위엄을 보여줬다. 


“똑똑” 


며칠 후 손님 침실엔 들어오지 않던 루카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무언가를 도와달라는 말에 루카스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병맥주 패키지와 수학 교과서가 있었다. 루카스는 병맥주 6개가 들어있는 꾸러미를 가리키며 내가 오기 전에 묵었던 손님이 두고 간 맥주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근데 네가 왜?ㅋㅋ). 그러면서 루카스는 나에게 딜을 했다. 맥주를 줄 테니 수학 숙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앙큼한 발상을 한 루카스가 귀여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학 숙제를 도와줬다. 이번에도 루카스는 “so fast!”, "absolutely"를 연신 외쳐대며 너무나도 감동했다. 


숙제를 다 풀고 라카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궁금했던 외국의 교육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계산기를 활용하여 문제를 푸는 것이 산수가 아닌 수학에 더 집중한 선진화된 교육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인간의 능력을 너무 제한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사람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계산조차도 계산기로 일일이 해야 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 것일까? 이런 방식이 성인 무대에서 오히려 좋은 성적을 받게 하는 원동력인가? 


공대생 습관처럼 혼자서 답을 내기 위한 해답 없는 고민을 했다. 




이전 08화 새미의 그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