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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봉 Jun 16. 2022

새미의 그 남자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인연이라고 칭할 정도로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도 외향형인 내 성격을 알아챌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과거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 새미에게는 세계일주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일정을 마친 저녁에는 게스트 하우스 주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녀의 여행기를 듣곤 했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흥미롭게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시간대로 나열된 이야기일 뿐인데 그녀의 유학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는 너무 재밌었다.


난 29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나와 동갑인 이 친구는 세계여행의 끝판왕인 세계일주를 마무리 중이었으니 왠지 여행의 멘토를 만난 기분이었다. 구글어스의 지구본을 돌리며 세계를 누리는 상상을 했었는데 현재 진행형으로 내가 원하던 것을 즐기고 있는 그녀가 너무 멋져 보였다.


새미의 여행 이야기 중 가장 재밌었던 지역은 단연코 남미였다. 나는 남미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남미는 치안적으론 두려움이 많이 느껴지는 지역이었지만 낭만이 넘칠 것 같은 지역이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런 사람들과 매일 같이 지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제 막 남미를 찍고 미국으로 넘어온 산 증인에게 그동안 남미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을 많이 물어봤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새미의 남미 이야기는 콜롬비아에서 만난 할아버지 이야기다. 콜롬비아는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라서 영어가 잘 안 통했다고 한다. 새미가 일행들하고 콜롬비아의 어느 지역을 갔는데 어느 할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새미와 일행들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스페인어를 못 한다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는데 답답하셨는지 못 알아들을 때마다 점점 크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크게 이야기하면 알아 갑자기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거란 믿음처럼 말이다. 


낭만이 가득해 보이는 쿠바가 남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였다. 새미도 쿠바를 갔다 왔고 나는 이것저것 물어봤다.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낸 사람에 대한 동경심과 부러움으로 새미의 쿠바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쿠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면서 새미는 나에게 빨리 쿠바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쿠바도 결국 점점 자본 주의화되고 있어 우리가 상상하는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녀의 남미 여행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한국인 남자가 자주 나왔다. 남미 여행에서 만나 같이 여행 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이야기를 들을수록 낯이 익었다. 그저 이야기로만 들은 게 전부고 사진을 본 것도 아닌데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남자가 왠지 익숙했다. 그래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아주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 남자의 정체는 내 대학교 친구 윤기였기 때문이다. 


졸업하기 전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떠났던 윤기는 엄청나게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툭하면 해외에 나가는 윤기는 갠지스강에서도 목욕을 하는 등 현지인들과 위화감 없이 여행을 하는 친구였다. 세계여행을 떠난 것을 부럽게 바라보면 윤기가 여행하던 남미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새미도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윤기는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바로 귀국을 했고 새미는 마지막 여행지로로 뉴욕에 들려 나를 만난 것인데 어쩜 정말 신기했다. 윤기가 내 친구라는 말에 새미와 나는 “세상 참 좁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한 일이었다. 괜히 내 여행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새미와 윤기와의 인연도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 운명적인 인연을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었다. 귀국하고 나서 새미와 한번 만나곤 했었고, 윤기는 학교에서 취업 준비하면서 종종 연락하곤 했지만 결국 연락이 끊겨 서로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르고 지내고 있다. 


몇 달 전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왔다. 업무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았는데 퇴근 때쯤 문자 한 통이 왔다.


“혹시 김봉석님 핸드폰 맞나요?”


나를 아는 사람 같아 퇴근 후 전화를 걸었는데 편입 전 학교에서 함께 학교 생활을 했던 선배님이었다. 토목분야 회사에 다니는 형은 구인을 위해 링크드인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내 프로필을 봤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링크드인으로 연락했지만 연락이 안 되자 동기들에게 수소문해서 내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주셨던 것이었다. 이후에 업무차 여의도에 오신 형과 15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되었다. 흐른 세월만큼 서로 많이 변했지만 함께 축구로 이야기로 격 없이 지냈던 그 모습은 그대로였다.


곱창에 소주를 마시며 아저씨가 되어 만난 우리를 보면서 수고스러움을 자처하며 연락한 형에게 감사했다. 형이 종종 생각났지만 끊어진 인연이라 생각하여 연락할 생각을 안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의지가 있다면 끊어진 인연이란 것은 잠시 멀어진 인연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말이다.


새미와 윤기와는 남들이 흔히 겪지 못하는 신기한 인연인데 계속 이어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둘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도 그때의 여행자의 아우라로 멋지게 살고 있을까? 이 책이 완성된다면 책을 핑계로 연락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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