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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May 24. 2024

갈대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 신경림 시인을 추모하며

그저께 5월 22일 신경림 시인이 타계하셨다.

'농무', '가난한 사랑의 노래' 등을 남긴 시인은 민중문학의 한 획을 그은 분으로 묘사된다.

(예전 학원 강사님의 수업을 더듬다 끄내본다)


사실 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이 분의 시 '농무'를 처음 접했는데,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벅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재미있는 표현이라 생각했지 그 깊은 뜻을 음미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던 그때,

무조건 핵심만 외워재끼는 시험스킬만 난무하던 그 순간을 난 부끄러워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지만 빨리 읽고 얼른 답을 찾아야 하는 그때,

가난이 뭐지? 사랑이 뭐지? 먹는 건가... 

그냥 무심한 채 감정의 욕망을 억누른 채 난 '정답을 찾는 사냥꾼' 노릇을 자처했다.


그저께 이소식을 듣고 올해 필사한 시를 쭉 훑어봤는데 신경림 시인의 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시험공부할 때 스치듯 지나갔던 시들은

내가 쉽게 곁은 내주지 못하고 뭔가 부담스러웠거라고 지레짐작해본다.


내가 이분의 시세계를 전혀 모르는데...

그렇다고 그분의 인터뷰 등을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도서관시집 코너에서 그냥 '나 그분 이름 알거든'하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필사해본다.

그리고 '갈대'에 대해 음미해 보았다.



갈대                                                 신경림(1935-2024)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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