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부끄러운 순간
월요일은 이래저래 피곤하다.
오늘은 파트원 한 분은 연차를 내서 체력 조절을 잘 해야 할 판인에 피로가 급 몰려온다.
말쑥한 차림에 환한 얼굴로 민원인이 내 앞에 앉는다.
난 매뉴얼 대로 친절하면서도 본인에게 필요한 부분을 안내해준다.
1인 가구.
소득과 재산이 없다고 한다. (나도 그런데)
12장의 신청서를 작성법을 설명하고 천천히 하시라 말씀드린다.
그분 글씨가 참 예쁘시다.
또박또박 정성스레 신청서를 메우는 민원인.
보통 민원인이 작성한 신청서 글씨처럼 괴발개발 쓰거나 바람에 날리듯 암호해독이 필요할 것 같은
난감한 상황은 아니다. 천만다행이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좀 적막해서 난 평소 하지 않은 짓을 하고 말았다.
"선생님, 글씨를 참 쓰시네요."
그분이 나를 지긋이 그리고 빤히 바라보며
"글씨 잘 써서 뭐해요...."
그분은 여러 사정으로 현재는 교회에서 숙식을 하며 신세를 지고 있다고 했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글씨 잘 써서 뭐해요."
주위에서 내 글씨를 보며 칭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도 말버릇처럼 그렇게 말했었다.
오늘은 무척이나 죄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분에게나 나 스스로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