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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Apr 25. 2024

퇴근을 하다가

- 이 시를 읽으며 무릎을 팍치다

오늘 글은 시 한 편을 소개로 시작하고자 한다.



퇴근을 하다가                                           유병록

저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늦지 않게 일어나서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합니다

당연한 미덕입니다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합니다

일터의 소중한 동료들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줍기도 합니다

제 일터니까요

회사에는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있습니다

대체로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일이 있습니다

저는 성실한 사람답게 일하고 일합니다   

일이 많다고 힘겨워하거나

일이 적다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퇴근을 하다가

회사 건물을 올려다봅니다

무사한 하루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저기 허공에

한평 남짓한 제 자리가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제 자리일 것입니다


저기서

꼭 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참 마음에 듭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구절 몇 개를 꼽자면,


1. 회사에는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있습니다. 대체로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일이 있습니다

   오고가는 민원인을 만나면 사실 괴로운 일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즐거울 때가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런 일이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 그 힘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시인의 말처럼 '그저 일'이라 에둘러 표현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2. 일이 많다고 힘겨워하거나 일이 적다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업무분장에 따라 일을 시작하지만 해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은 늘어만 간다.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마음은 바빠지고 그 와중에 실수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음을 늘 켜고 다닌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바쁜 부서구나 생각하고(민원인이), 어쩌다 한가하면 꿀 보직(?)이라 오해하는 

  (타 부서원이) 그 오묘한 눈길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버거워진다.


3. 저기서 꼭 제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참 마음에 듭니다

   어느 부서 누가 갑자기 못 나오든 안 나오든 자리가 비게 되면 한순간 당황하게 되겠지만,

   다음 날이면 조직은 보란듯이 그리고 아무런 티 없이 잘 굴러가게 됨을 목격할 것이다.

   지금 내 일이도 어쩌면 다른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그럼에도 이 자리를 지키고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다달이 급여를 받아 요긴하게 사용하고.


다음 주면 5월인데 아직 퇴근 길은 쌀쌀하다.

이 시를 필사하면서 내 마음이 다시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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