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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혁 Mar 19. 2022

파친코

이민진 「파친코」

    한국계 1.5세대로 미국에서 자란 작가 이민진이 쓴 장편소설 「파친코」는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애환을 표현한다.


    가난한 '양진'과 언청이에 절름발이였던 '훈이' 사이에서 태어난 '선자'는 영도에서 자란다. 우연히 만난 '한수'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그가 유부남임을 알고 배신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양진의 하숙집에서 신세를 지던 목사 '이삭'은 선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여 형  '요셉'과 형수 '경희'가 있는 오사카로 함께 떠난다.


    오사카에서 선자는 한수의 아들 '노아'와 이삭의 아들 '모자수'를 낳고, 이삭은 옥살이를 한 뒤 세상을 떠나지만 다섯 식구는 악착같이 살아낸다. 노아는 와세다 대학에 합격하고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을 배우며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 야쿠자 한수가 자신의 생부임을 알게 된 노아는 도쿄를 떠나 나가노의 파친코에서 '리사'와 새 삶을 시작하고, 모자수는 요코하마에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며 아내 '유미'와 아들 '솔로몬'을 낳는다.


    노아는 선자가 찾아온 뒤 자살하고, 솔로몬은 국제학교에서 미국대학교로 진학한 뒤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지만, 그곳에서도 결국 일본인이지도 조선인이지도 못한 채 쫓겨나고 아버지의 파친코로 가게 된다. 선자가 노아의 무덤을 찾아간 뒤 집으로 돌아오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책은 다양한 삶의 애환을 녹아내었다. 일제 치하의 조선인이 일본에서 겪은 차별대우(공통), 여성으로서 감내해야만 하는 삶의 고난(양진, 선자), 기독교인이 겪어야만 했던 박해(이삭), 파친코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부당함(모자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 사이의 마찰(요셉), 재일교포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솔로몬, 피비), 사랑과 생존(창수, 한수, 하나) 등 세대와 개인마다 피해 갈 수 없는 애환을 우리 역사의 가장 비참했던 시기와 격동적인 배경에서 표현했다.


    그러나 이 책의 인물들은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선자는 가난한 오사카 생활에서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김치부터 설탕과자까지 장사를 시작했다. 모자수는 가난을 이겨내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파친코라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삭에게는 하느님의 존재가 항상 있었고, 유미에게는 미국과 캘리포니아라는 꿈이 있었다.

 하루키는 공원에서 동성 매춘을 했고, 하나는 결국 마약에 빠지고 말았다.

 요셉이 화상의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가족들은 비싼 값으로 약을 사 오기도 하고, 노아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한수는 부족함 없이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들의 노력의 결과는 매번 달랐다. 인물들은 각자의 성공을 이루기도 하고, 수렁 같은 나락으로 빠지기도 했으며, 남의 도움으로 얻어 낸 구원은 더 큰 파멸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희망의 여지가 남아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시대적, 공간적, 상황적 배경들이 아무리 제멋대로 날뛰더라도 각자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고 희망에 홀린 듯 그 가능성에 도전해야만 하는 불나방 같은 우리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읽으면서 내가 노아, 모자수(모세), 솔로몬 등 기독교적인 이름들이나 오사카, 도쿄, 나가노, 요코하마 등 일본의 지역들이 지닌 이미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았다면 책의 내용을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좋은 책이었다.


    잃기도 하지만 걸어야만 하는 파친코처럼, 우리네 삶도 인생의 길을 잃기도 하지만 걸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애환(歡)'의 뜻이 슬픔과 기쁨인 것처럼, 슬픔 없는 삶도, 기쁨 없는 삶도 있을 수 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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