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AGE Jul 05. 2024

악몽의 시작

다섯 번째 집 - 미사강변도시 33평 아파트 3층 2



첫째의 독감.

악몽의 시작이었다.


독감을 판정받고 타미플루 5일 치를 받아왔다.

타미플루의 부작용으로 한창 사회가 시끌한 때였다. 약을 먹던 아이가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느니.. 환청을 들었다느니..

설마 그럴 일이 발생하리라 감히 생각도 못했다.




약을 먹은 첫날밤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 침대를 두드리며 울기 시작했다. 열 때문에 아파서 그런 줄 알았다.


다음날, 열이 내리면 살아났다가 고열로 오르면 축 쳐진 아이가 안쓰러웠다. 밤이 되었다. 또 갑자기 일어나 "아니야"를 외치며 거실로 달려 나간다. 통곡을 하고 쿠션을 때리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도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동네 엄마들 단톡방에 '독감약 진짜 환청 들리나봐요' 하면서 저래도 귀엽다며 글을 올렸다. 저녁이 되니 다시 증상이 발동한다. 고작 4살짜리 아이가 괴로워하며 우는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소아과로 향했고 3일 동안 먹은 약을 끊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독감 증상과 고통의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사라진 줄 알았다.




건강이 회복되고 다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4살이 되어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조금은 엄격한 선생님이었지만 좋은 분이셨다.


일주일 다니더니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다녀오면 한 시간 넘게 마냥 울어댔다.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도 하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바뀌고, 심지어 동생도 기어다니기 시작했으니까.


방 하나를 놀이방으로 꾸며놓았는데 바닥에 장난감과 책, 물건들을 가득 늘어놓았다. 정리하거나 청소를 한다고 하나라도 옮기면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어떻게 기억하는 건지. 방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밤에는 여기서 혼자 자겠다며 이불을 깔아달라 떼를 썼다. 이런 시간을 보낸 지 3주가 넘었다.

내 35년 인생에 가장 슬프고 힘든 날들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아이와 가정 심리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난다. 아이는 문제가 없었다.


사랑을 많이 주라는 처방을 받았다.

8개월 된 둘째를 시댁과 친정에 맡겨두고 셋이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첫째 아이에게 가족들의 3박 4일을 쏟아부었다. 아이는 행복해했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놀이방을 정리하자는 약속을 하며 트램펄린을 구입했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첫째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 모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전 10화 분위기가 올드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