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아이의 입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말이었다. 학교만 가면 배가 아프다는 아이. 며칠 동안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오늘도 배가 아프다고 하네요."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집안을 서성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걱정할 일이 없었던 터라 나도 선생님도 당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거리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해맑게 장난을 치고 있다. 방금 전까지 배가 아프다고 하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웃고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혹시 별 일은 없었던 거지?"
처음에는 별일 없다며 고개를 푹 숙였던 아이가,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 싸웠어. A랑 B가."
아이의 이야기는 앞뒤가 뒤섞여 있었다. 가만히 듣다 보니 상황이 그려졌다.
여자친구 A와 놀고 있었는데 남자아이 B가 같이 놀자고 다가왔다고 했다. 그런데 A와 B의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이 벌어졌고, 평소 평화주의자였던 아이는 두 친구를 중재하려 했던 모양이다.
"싸우지 마. 둘이 사이좋게 지내."
아이는 여자친구 A에게
"A야, B랑 싸우지 마."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이 문제였다.
A가 도리어 아이에게 화를 냈다고 했다.
"너 B 편이야? 실망이다. 우리한테 상관하지 마"
그리고는 그냥 가벼렸다고 한다.
아이는 그 상황을 몇 번이나 반복해 설명했다. 그때의 표정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엄마'라는 존재와 '친구'라는 존재가 점점 비슷한 무게로 자리 잡아가던 그 시기에, 그 반쪽의 전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을까.
아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중재에 나섰던 자신이 오히려 외면받았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과 학교 상담 선생님께 아이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모든 아이들이 겪는 일이야. 네가 다른 친구들 사이의 문제에 너무 상관하지 않으면 돼. 괜히 오해만 생기니까 알아서 해결하게 두렴."
선생님들의 말이 틀린 건 아이였다. 아이들 사이의 다툼은 흔하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른들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했고, 아이의 배는 계속 아팠다. 교문 앞에서는 늘 울음이 터졌다.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일주일 동안 학교를 쉬었다. 놀이공원에 가고, 머리카락에 살짝 염색도 시켜줬다. 용기를 주는 인형도 사주었다. 아이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괜찮아질까?'
작은 희망이 생겼다.
학교로 돌아가는 날이 되자 다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밤에는 학교 가기 싫다고 울며 잠들었다. 아침이면 옷 입히는 것부터 전쟁이었다. 어르고 달래다가 화도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교문 앞에 도착하면 아이는 나를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등교할 때마다, 우리 아이는 나와 교문 앞에서 사투를 벌였다.
문제의 A와 마주쳤다. A는 매일 사과 편지를 써서 아이에게 줬다. 선생님도 사과를 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A를 볼 때마다 아이는 내 뒤로 숨어버렸다. A는 오히려 더 다가왔다. 선생님 말로는 A는 뒤끝이 없어 기분이 나빠도 금방 잊는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눈치도 없는 것 같은데. 모른 척해주면 좋겠건만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우리 아이와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버텼다.
A를 피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침 일찍 등교하기로 했다. 미리 가서 도서관에 있다가 교실로 가기로 한 것이다. A와 마주치지 않는 동선으로 아침을 보내자 아이의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한 달쯤 지나고부터는 가는 길에 마주치는 모든 친구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예전의 그 외향적이고 다정한 아이였다.
1년이 지났다.
아침에 울며 배 아프다고 하던 아이는 더 이상 없다. 아침미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할 수 있도록 나 역시 미리미리 준비시켜 준다.
A의 눈치 없는 행동에 불편해하는 순간도 있다.
"그건 싫어. 그만해."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예전엔 무조건 맞춰주고, 친구의 요구에 응하던 아이가 이제는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노련함이 생겼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아이가 변하지 않았을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여전히 아이는 남에게 맞춰주며 "괜찮아"만 반복하는 아이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엄마인 나도 그랬으니까.
아이의 E 성향을 때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배워간다.
아이는 친구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아이에게 싫다고 해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