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인근 지역에 15cm 이상의 폭설과 Black ice 발생에 대한 안전 경고로 시끄러웠다. 재난 대응 시스템에 대한 독일 정부 차원의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유래 없이 예고된 경고에 따른 대응인지,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은 하루 문을 닫았고, 아침에 출발 예정이던 항공편은 모두 취소 되었고, 연신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경고 메세지가 이어 졌다. 하지만 웬걸, 정작 어제 - 경고의 그날엔 - 는 맑은 하늘이라 모두가 황당해 했는데, 결국 오늘 아침에 펑펑 눈이 내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한파가 이어지지 않아 퇴근길의 빙판길 대란은 어찌 어찌 피하게 되어 다행스럽다.
조금이라도 눈발이 날리게 되면 아침일찍 일어나 집앞의 눈을 쓸어 내야 한다. 한적한 독일 주택가에 살다보니, 금방 금방 제설 작업이 이루어지는 큰 길과 달리 마을의 골목 골목은 집집마다 치우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고, 눈이 오면 집집마다 빗자루와 눈삽을 들고 나와서 집 앞을 쓸어 내는 것이 이곳의 풍경이다. 평펑 내리는 눈속에서 눈을 쓸어 내는 일은 참 힘빠지는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그곳에서 지겹도록 경험해 봤을 그 일은 아무리 쓸고 지나가 봐야 다시 금방 또 쌓이는 보람 없는 작업의 대표격이다. 어차피 쌓일거 왜 쓸어내야 하지 하는 질문을 아무리 해 봐야 소용없다. 그냥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는 수 밖에. 차에 시동을 걸고, 창문을 녹이면서 한참을 분주하게 눈삽을 들고 퍼 날랐다.
보람 있는 일. 어린시절에 종종 들을수 있었던 그 잔잔하고 따뜻한 말을 점점 떠올리기 어려워지는 시절이다. 뭐, 내가 지금 하고 있는일이 특별히 불만족 스럽다던가, 인정일 못 받는다던가 하는 개인적인 불만이라기 보다는 일을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사뭇 보람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그냥 돈 받으면서 시키는 일, 필요한 일을 하는거지 뭐 굳이 보람 같은 것이 필요할까? 위에서 이야기 하는 보람은 값싸게 부려 먹으려는 술수 같고, 아래에서 이야기 하는 보람은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정신 승리 같다. 철저한 돈과 실력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보람을 이야기 하는건 국민학교 시절의 어느 교과서에 나오는 빛바랜 장면인 것만 같다.
우리집 앞을 다 쓸고 나서 보니, 너무 옆집과의 경계가 선명하다. 아무리 독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이렇게 경계를 지어 놓고 출근하려고 보니 너무 매정한것 같다. 우리 좌우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을 떠올려 보니, 그 분들에게는 좀 힘든일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 눈삽들고 나온거 좀 더 치우자 마음을 먹었다. 너무 무리 했나 싶었지만, 이미 눈 덮힌 길 한가운데에 치워야 하는 경계를 딱 지어놓은 터라.. 어정쩡하게 멈출수는 없었고, 결국 딱 그만큼만 눈을 더 퍼냈다. 처음 쓸어냈던 우리집 앞을 보니 벌써 눈이 다시 좀 쌓여 있다. 우리 좌우 이웃에 내가 만들어 놓은 이곳도 결국 금새 다시 눈이 덮히겠지. 눈삽을 넣고 차에 타려는데, 옆집 2층 창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팔을 번쩍 들어 따봉을 날려 주신다. 다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보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전달되는 것임을 새삼 발견한다.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흩어지는 것같은 나의 수고가 빛을 발하는 것은 결국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그 순간이다. 타인의 감사가 나에게 보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감사가 타인에게는 보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눈길을 헤치고 숲속의 산책길로 나서는건 춥고, 번거로운 일 이지만, 모처럼 고향을 느끼며 펄쩍 펄쩍 뛰는 반려견 히로를 보면 보람이 있다. 월급 받는 다고 끙끙 버티다가 집에 가서 어느새 불쑥 커버린 아들 녀석을 보면 그 돈이 다 이녀석 세포에 새겨져 있구나 보람을 느낀다. 굳이, 무엇하러, 내가 왜? 라는 경계를 넘어선 나의 행동과 감사를 타고 보람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작은 깨달음이 펑펑 내리는 눈과 함께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