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사랑과 전쟁
웃길지도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이혼 절차를 준비하는 나 자신을 시뮬레이션 해 봤다.
"법원에 가서 차를 주차하고(당연하게도), 지정받은 호실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름이 호명되면 법정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을 하면 최종적으로 이혼 판결을 받겠지."
왠지 이혼을 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내 자신을 생각해 보니, 티비에서 봤던 "사랑과 전쟁"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물론 티비에 나오는 사랑과 전쟁과 다른 점은 극 중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로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나는 진짜로 이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 이번 이혼은 처음 겪는 것이라서 (두 번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 경험이다), 어떻게 진행이 될지는 모르지만, 변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법원에 출석해서, 이혼 조정원이 묻는 대답에 '예' 또는 "노"라고 대답하고, 이혼 조건을 검토한 후에, 서로가 조건을 받아들이면, 판사가 최종 내용을 확인하고 이혼이 되었음을 최종 판결하는 절차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난 아직 한 번도 법원에 가지 않았는데, 이미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씩 법정 출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법정 출석 때마다 나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중 가장 내가 속 시원하다 생각한 반응은 법정에 출석하고, 판사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일어나서 "이 이혼은 무효야! 난 이혼을 인정할 수없어!"라고 소리치고 법정에서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왠지 내가 비련의 남주인공이 되고, 영화 마지막에 상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제법 좋았다. 그 외엔, 이혼을 하고 나서 아내에게 심한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버전과, 아내 부모집에 방문하여 난동을 부리는 버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내 마음의 배신감과 분노를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만큼 나는 패배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이 이혼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난 이혼을 후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 해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많은 부부는 이혼을 할 정도가 되면, 이혼을 정말 잘했다 라는 생각을 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하는데, 난 왜 이렇게 뜨뜻 미지근한 감정인지 나도 혼란스러웠다. 만약 내가 실수를 (외도) 했거나 상대가 바람을 피웠다면 감정 정리가 매우 깔끔할 텐데, 결혼 관계에서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이 아내의 변심에 의해 이혼을 하게 되니 내가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이혼 후의 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이혼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혼 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새로운 인연을 만날지. 내가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웃기지만 난 이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니, 나도 내 자신이 참 웃겼다. 그리고, 속물스러운 나 자신을 발견한 것 같아, 뒷 맛이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4일 남은 이혼 조정일이 가까워질수록 나의 마음이 폭풍우에 흔들리는 갈대가 허리를 반쯤 꺾이듯이 흔들리는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