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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외부의 박수보다 중요한 단 하나의 기준

by 나저씨

나저씨님께


불과 며칠 전 개인전에서 만났는데, 이렇게 편지를 드려서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개인전과 책 출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랜 기간 준비한 개인전이라 흥분하며 어린아이처럼 웃던 작가님의 미소가 기억납니다. 개인전에 방문한 게스트들을 맞이하시느라 많은 시간을 대화하지 못했지만, 그중 나저씨님께서 하신 한 말씀이 집에 돌아와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원하고 준비하던 일을 이뤘지만, 그 성취에 기뻐하고 만족하지 못한 채, 불안과 걱정으로 이 다음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저도 십분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가님께서 먼저 편지를 보내지 않으셨지만, 갤러리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연장선상에서 제 생각을 나누고자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사람은 왜 만족하지 못할까요? 왜 이렇게 불안한 기분이 들까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 바로 그 순간, 왜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이른바 '현타'가 찾아오는 걸까요? 이 감정은 회사에서도 흔히 겪고, 또 자주 목격하는 장면입니다. 회사 내에서 승진과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다 어느 순간 크게 넘어지는 사람, 남의 다리를 걸어가며 올라가던 사람, 어렵게 목표한 자리에 도달했지만 그 자리가 결국 유리천장 위였음을 깨닫고 무너져 버리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런 여러 인간 군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아갔고,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인정하자면, 처음에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 승리와 성취감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불안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그 자리, 인생과 직장에서 가장 높은 정점을 찍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길은 그 자리를 지키거나, 내려오는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버텼습니다. 그리고 퇴직할 때까지 그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스스로 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처럼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라고, 속으로는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제 삶이 사실은 큰 실패였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퇴직하고 회사를 벗어나 보니, 회사 밖의 저는 아무런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 혹은 언젠가 할아버지가 될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제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메모하던 사람도, 제 눈을 마주치지 못해 긴장하던 사람도 이제는 제 곁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허상'을 쫓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요.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자 경험일 뿐이고, 작가님의 환경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편지를 읽으실 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만 가볍게 골라 참고해 주시면 충분합니다.


퇴직 후 제 삶을 다시 돌아보며 제가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이겁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님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고, 그에 맞춰 대우합니다. 직업, 타이틀, 성과, 사회적 위치 등을 통해 나를 읽고 평가하지요. 그런데 이 외부의 대우를 곧바로 '내 능력'이나 '내 권리'라고 착각하는 순간, 괴리가 생깁니다. 회사 내에서 주어지는 권한과 역할은 말 그대로 "주어진 것"일뿐입니다. 그것이 곧 '나 자신을 대표하는 실체'가 아니란 점을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직장에서 얻은 타이틀로 인해 주어지는 권한은 그 타이틀이 가진 힘일 뿐, 나라는 사람 전체의 가치와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과 능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내가 가진 '위치'와 '직함'이 주는 힘을 보고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점을 잊어버리면,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과 박탈감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때 겪게 될 공허함과 상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해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나저씨님의 개인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나저씨님은 개인전을 진행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신 듯 보였습니다. 개인전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것, 지인들이 생각만큼 찾아와 주지 않는 상황을 겪으며, 배신감과 상실감, 그리고 개인전 이후의 계획이 뚜렷하지 않다는 불안 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개인전을 '자기 것으로'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계신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가님,

함께 담소를 나누며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개인전은 누구에게 작가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여는 자리가 아니라고요.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님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남이 정한 가치가 아니라, 내가 정한 가치로 내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작품과 공간 전체에 깔려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저씨님께 가장 강하게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것 하나입니다.


"작가님의 가치는, 작가님이 정하시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실망도 되고, 두렵고, 막막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오지 않은 전시장의 공기, 생각보다 조용한 반응, 이후의 계획이 뚜렷하지 않은 미래… 이런 것들이 마음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꼭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내 가치는 '결과'나 '타인의 반응'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선택하는지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이번에도 글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나저씨님께서 예전에 물어보셨던 "회사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에 대한 제 생각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그 답은 이미 이 편지 곳곳에 스며 있기는 합니다만, 다음에는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의 '나'를 지키는 법에 대해 제 경험과 깨달음을 조금 더 자세하게 적어보겠습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고, 내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변덕스러운 기온 변화 속에서 항상 건강 유념하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 계절을 건너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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