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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노 Oct 25. 2024

나를 보는 너를 보다

보다


매일 하늘을 본다.

 누가 공중에 여러 푸른색과 흰색의 물감을 풀어 시시각각 달라지는 수채화를 실시간으로 전시하나.

매일 다른 아름다운 하늘이다. 그 아름다운 하늘을 가까이서 늘 볼 수 있어서 좋다.

나와 하늘의 관계는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때, 시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친구가 학교를 안 나와서 떨결에 내가 대신 나갔다. 시험을 못봐서 우울한 마음이었는데 교실에서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의 환한 하늘을 보고 우울한 마음이 스르륵 사라졌다는 실제 경험으로 하늘을 주제로 처음 글쓰기를 했다. 자신없게 쓰고 창피해서 제일 늦게 제출 했는데 생각지 못한 큰 상을 전교생 앞에서 받고 나에게 이런일이 생기다니 까무러치게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어릴 때 부터 하늘은 내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해서 정화시켜 주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늘 하늘을 본다. 기분이 좋아서 보고 마음이 우울해서 보고 하늘의 표정은 어떤가 해서 본다. 동네에서 하늘을 보다가 도시를 벗어나면 하늘이 광대해진다. 빌딩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하늘을 더 잘 볼 수가 있다. 언젠가 여행을 갔다가 갑자기 새벽에 돌아와야 할 일이 생겨 운전하면서 본 새벽하늘에는 저녁노을이 있었다 . 일출을 바다에서 본적은 있지만 운전하면서 본 그 새벽하늘의 색깔은 또 다른 풍광이었다.  

 노을이 질 때 하늘은 세상에 톤 다운된 분위기의 조명을 밝혀준다. 밝음과 어둠의 중간에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슬퍼지기도 하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의 때이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해가 질 때이다. 어린왕자는 별 B612호에서 마음이 적적할 때 의자를 조금씩 뒤로 옮겨가며 하루에 마흔네번 노을을 보았다고 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라는 한용운 시인의 시구가 떠오를 때도 있다.  

왜 하늘은 아름다운 걸까.

가끔 바다를 본다.

 내가 사는 곳에서 바다를 보려면 서쪽으로는 1시간, 동쪽으로는 3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가야 한다. 매일 볼 수 있는 하늘과 달리 바다는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볼 수 있다. 그렇게 찾아간 바다는 움직이는 수채화다. 여름과 겨울 휴가철에 많이 가다가 어느 찾아 갔던 동해바다는 영화에서 봤던 따듯한 색채의 남프랑스 해변같아 깜짝 놀랐다. 뜨거운 여름바다와 추운 겨울바다가 아닌 따듯한 봄의 바다는 아득한 느낌이다. 표현할 언어를 잘 모르겠다.  바닷가의 풍경들. 정박해 있는 배들, 갈매기들, 등대들,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들...

평소에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라 좋은건가. 바다와 바다 옆에 있는 모든 것들이 좋아 시간을 만들어 바다를 찾아간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 펼쳐지는 각종 푸른 계열의 색은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자연이 예술이다. 해가 지는 서해바다의 궁평항은 놀라운 일몰을 보여준다. 매일 연출되는 일몰장면은 바다를 찾아준 특정 관객에게만 보여진다.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에서 보여준 지구의 사진은 우주 안에 푸른 창백한 점 하나 인데, 그 점 안에 내가 사는 일상의 반경은 그 크기가 있기나 할까. 내가 이 좁은 일상의 반경에서 동동거리며 살고 있는 동안 궁평항 일몰이 매일 장관을 보여주듯 아이슬란드의 폭포들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숲들은, 세계는, 자연은  매 순간 장관을 펼칠것이다. 대 자연 앞에서 삶의 걱정과 근심들도 함께 작아진다.

그가 나를 본다.

 나를 보는 그를 본다. 정면으로는 잘 보지 못하겠다. 안보는 척 본다. 나를 보는 그의 시선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서로를 잘 알게 되면 사라질 감정이고 서로가 알게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나를 보는 그를 본다. 인간이 본다는 것은 각막을 통해 들어온 빛이 수정체에 굴절되어 유리체를 통과하고 망막에 맺힌 상이 뇌에 시각정보로 전달되어 인지를 하는 행위이다. 눈으로 본 것을 이해 하기 위해 본것을 해석한다. 하늘을 해석하고 바다를 해석하고 나를 보는 그를 해석한다. 나의 해석과 그의 해석이 다르다. 나의 해석과 너의 해석이 다르다. 우리는 세계를 보고 경험한 것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며 살고 있다. 우주의 푸른 창백한 지구별, 점 하나 안, 내 삶의 시야에 들어오는 작고 작은 세계에서 하늘을 만나고 바다를 만나고 그를 만난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지구별 내가 만나서 보는 내 세계의 모든 것에 갑자기 애정이 간다. 각자 다르게 보는 내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한없이 작을 내가 볼 수 있는  세계의 모든것들에 대해 깊이를 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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