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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노 Oct 29. 2024

매일

하다

쇼팽 녹턴( Chopin, Nocturne) Op. 9 No 2.을 치기 시작했다. 


 내 수준에 딱 봐도 어려운 악보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가르치는 어머니 친구분 집에 따라가서 처음 피아노와 냉면을 만났다. 한번 쳐보라며 건반을 누르게 해 주셨고 나는 피아노에게 첫눈에 반했다. 점심으로 대접받은 냉면의 맛도 기가 막혔다. 그래서 그날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날로 기억된다. 건반을 누르면 나는 피아노 소리에 빠져들어, 없는 형편에 1년 정도 배웠나, 정확하지가 않다. 집안 사정으로 어느 날 피아노를 못 배우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 배우다 안 배우다를 반복하며 피아노에 대한 애정을 지속해 왔다. 어쨌든 피아노의 끈을 놓지 않아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곡이 쇼팽 녹턴 Op. 9 No 2.이다. 베토벤은 웅장하고 모차르트는 경쾌한데 쇼팽은 마음을 후빈다. 슬프고 싶은 사람에게 쇼팽의 곡을 권한다. 해가 질 때, 파주의 <콩치노 콩크리트> 음악감상실에 가서 쇼팽의 곡을 들으면 깊은 슬픔에 빠질 수 있다. 그 나의 마음을 후비는 쇼팽을 시작한 거다. 악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번 두 번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면 더듬거리던 손이 자연스러운 음을 만든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이 된다. 


 악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가 또 안될 것 같은 어려운 부분을 만난다. 더듬더듬 힘겹게 건반을 누른다. 이게 될까,  처음 부분도 됐으니까 되겠지 하면서 또 낑낑거리며 쳐 본다. 한 번 칠 때, 두 번  칠 때 달라지는 건 모르겠다.  열 번 칠 때, 백 번 칠 때는 확실히 다르다. 

반복이 차이를 만드는 순간이다.  


 손가락이 악보대로 건반을 누르는 행위를 뇌가 학습하고 기억해서 익숙해졌다. 이제 내가 쇼팽 녹턴 9번 2악장을 더듬거리지 않고 어느 정도 친다. 그다음은 악상(想)을 넣어야 한다. 느낌을 살리려면 악보를 외워야 한다. 반복해서 연습을 하고 의도적으로 외운 후, 피아니스트 임윤찬처럼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한 음 한 음에 정성을 들인다. 나름 악상대로 쳐 보는데 임윤찬처럼 안된다.ㅎㅎ EBS 노자 강의를 듣고 좋아하게 된 최진석 교수님의 책 < <건너가는 자>>에서 <반복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부단히 반복해야 넓어지고 차이가 생긴다. 넓이와 높이가 바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세상 이치는 그렇지 않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어떤 묘한 경지는 누가 단순한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느냐로 결정된다. 어떤 행위를 했다 안 했다 하거나 잠깐 하다 마는 일이 아니다. 평생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 될 때까지."


내가 사랑에 빠진 피아노만 이런 게 아니다. 라인댄스를 한 지 2 년 정도 되었다. 다른 댄스에 비해 비교적 어렵지 않은 안무이기는 하지만, 매번 새로운 노래에 맞춰 안무를 시작할 때 엉기적엉기적 따라 하다가 그 동작을 완전히 익히고 음악에 몸을 맡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쇼팽 한곡을 완성할 때와 다르지 않다.

모든 일의 과정이다. 

매일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고 책을 읽고 외국어를 공부한다.  매일이 쌓여 쇼팽을 치고 쇼팬하우워를 읽고 가벼운 영어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기 싫고 어려운 일들이 주로 우리를 더 나아지게 만든다.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 매일 피아노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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