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을 수 있는 것들이 좋다. 그릇, 컵, 잔, 꽃병, 화분...그 안에 담긴 것들도 아름답다. 중독된 커피의 향과 색, 와인에게 기대하는 느슨함과 와인의 색, 차분함을 담당하는 각종 따듯한 잎차들, 달콤한 과일의 신기한 모양과 맛과 다양한 색, 꽃병에 꽂힌 무수히 많은 미치게 예쁜 꽃들, 작은 꽃병에 담긴 몇 송이의 꽃들도 미소가 지어진다. 담기지 않은 채로 놓인 그릇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김치가 담겨도, 멸치볶음이 담겨도 그 조화가 아름답다. 해마다 수확해서 보내 주는 지인의 블루베리들, 근무지에 있는 대추나무 털어서 모인 대추들, 여름의 방울토마토들, 살구들, 모과도 그 색깔이며 모양이 예술이다. 매끄러운 과일들과 달라 더 작품 같다. 다듬은 파나 양파들, 무들, 마늘들, 당근들, 가지들.... 다듬어 놓은 각 채소들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진다.
자연에서 나는 것들은 죄다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나 보다. 아름다움은 멀리에 있지 않다.
11월의 거리는 가을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짙어진 노란색의 은행나무 잎들이 차도에서 춤을 춘다. 봄에 벚꽃 잎 휘날리던 길들은 알록달록 붉은 잎들이 쌓여, 생동감 있는 핑크색 봄과 달리 센티멘탈해지는 정서를 유발한다. 봄의 좋음과 가을의 좋음이 다르다.
나무는 봄에 연두잎들을 내고 시간이 지나면서 연두색 그러데이션을 보여준다. 이어서 황홀해지는 꽃을 피우고 가을에 그 아름다운 열매들을 우리들에게 먹이고 낙엽으로 세상을 컬러풀하게 물들인다. 최근 내가 사는 지역에 두 곳의 수목원이 나타났다. 나무와 나무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산책과 관찰의 기회를 주는 작은 자연이다.
수목원 안, 온실에는 호주의 식물들이 있다. 잎이 꼬불꼬불하기도 하고, 축 늘어져 있기도 해서 낯선 즐거움을 주는 지구 남쪽의 식물들이다. 수목원 안을 들어서는 순간, 미술관과 도서관과 공연장을 들어설 때와 같이 심장이 나댄다.ㅎㅎ 예전에 산을 좋아하던 선생님이 같은 산을 올라도 매번 다르다고 하셨는데 나이 드니 알 것 같다. 수목원 나무들의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다.
그릇을 좋아하고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식물의 세계까지 왔다. 도구로 쓰이는 인간이 빚은 담는 것들에 담기는 것은 자연인가 보다. 그릇도 예술이고 그 안에 담기는 것도 예술이다.
자연은 예술이다.
예술이 따로 없다. 집 앞을 나가니 어느새 빨강이라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마법같이 나타났다. 잘 차려진 식탁 위의 음식들은 먹다 보면 너저분해지고, 꽃병에 갓 꽂은 싱싱한 꽃들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모든 것은 변한다. 번쩍 눈에 띄는 빨간 단풍도 잠깐이겠지. 그러나 단풍나무가 가면 겨울이 오고 또 새봄이 온다. 인생은 짧고 도처에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지나간다. 나는 담을 수 있는 것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