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예연 Apr 10. 2022

사랑과 우정이 전부였던 시절



"그 시절 나의 일기장엔 온통 사랑과 우정뿐이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최근 의견이 분분했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 작품에 대한 모든 건 작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내심 서운했던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화를 굳이 보지 않았고, 미루고 미루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지..' 하며 밀린 숙제 처리하듯 마지막 화를 봤다. 그리고 그렇게 본 마지막 화가 나에게는 가장 좋았던 화로 남았다.


혹시 나만 결말이 좋았던 건가 싶어, 서로 드라마 취향이 같아 매번 같은 드라마를 보는 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나만 이해돼? 난 그냥 이진이도 희도도 다 이해돼. 이해가 되어서 더 슬프고 아련해."


친구도 그랬다. 자기도 물론 아쉽지만 결말은 괜찮았다고. 중요한 건 둘이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둘이 함께해 온 시간인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문득 친구의 옛날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던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다 같이 영화를 보곤 했다. 다양한 영화 중에서도 친구는 항상 로맨스 영화를 가져왔는데, 친구가 좋아하는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두 주인공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함께 하는 결말로 끝난다는 것. 친구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사랑과 행복만이 가득한 동화 속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하나 둘 연애 상담을 할 때였다. 누군가 남자 친구와 싸웠다는 얘기를 하면 친구는 누구보다도 속상해하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하지만 상황을 불문하고, 친구의 포인트는 늘 상대방의 변해버린 마음이었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렇게 변해버리냐고.. 너무 속상하다."



고민을 털어놓은 당사자보다도 변해버린 상대방의 마음에 더욱더 속상해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누구보다도 한결같고 영원한 사랑을 꿈꿨던 사람이었다.


그런 친구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이 이해가 된다고 했다. 누구보다 해피엔딩을 바라던 친구가 중요한 건 둘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간의 추억이라고 한다.




친구와 비슷하게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지금의 사랑과 우정이 영원할 거라고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미래에도 반드시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시간 속에 변치 않는 것이 더 어색한 일임을, 나 또한 점점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한결같은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영원한 것이 없음에 슬퍼지는 대신에 그게 너무 당연하기에 지금 이 순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해진다.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공감의 포인트는 모두 다르지만, 나는  드라마가 흥행한 이유 주인공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정한 시대적 배경에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중심에는, 서로의 응원으로 좌절하지 않고 성장해가는 청춘들이 있었다.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는 그들의 모습,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들의 모습은 존재만으로도 빛이 났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그들의 모습에 먼저 움직이지 않았을까. 어린 날의 그런 마음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아니까.



만약 드라마가 사랑에만 초점을 맞춰 결말을 냈다면 이 드라마는 흔한 사랑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시대의 아픔, 우정, 꿈, 좌절, 열정 등. 이런 모든 것들보다도 청춘 남녀 두 사람의 성공 러브스토리가 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엔딩이었다면 보는 그 순간엔 행복하고 만족스러웠겠지만 그 이상의 공감과 감동에 다가가긴 힘들었을 것이다. 모두의 막연한 희망일 뿐, 각자의 구체적인 현실에서의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모두가 기대하던 결말을 맺지 않음으로써 다시금 떠올려줬다. 현실에선 매우 익숙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결말을.



함부로 영원을 말하기도 하고, 사랑과 우정이 전부이기도 했던 누구나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모든 이야기는 각자가 겪은 만큼 와닿고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래서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과 우정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시절, 드라마 못지않게 온 마음을 다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나를 여전히 미소 짓게 하고 아련하게 하기도 하는 그때 그 시간들. 드라마를 보며 그때를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 시절 나의 일기장엔 온통 사랑과 우정뿐이다.
사랑과 우정이 전부였던 시절,
그런 시절은 인생에 아주 잠깐이다.

민채도 뜨겁게 겪어봤으면 좋겠다.
요란한 우정과 치열한 사랑을.

긴 인생을 빛나게 하는 건, 그런 짧은 순간들이니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작가의 이전글 1년 만에 만난 친구의 한마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