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의 마지막 발표 날, 발표 장소에 택시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대본을 다 외우지 못해 기사님께는 “강남역으로 가주세요.”라고 간단히 말한 뒤, 시선은 대본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몇 분, 발표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 아들~”
기사님 아들의 전화인 듯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로 보아, 훈련소에 있는 아들의 전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지내? 힘들진 않고?”
“5분밖에 통화 못한다고?”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받으셨기에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렇게 살가운 아들은 처음이었다. 처음엔 중학생 아들인가? 할 정도로 애교 섞인 목소리에, “아빠~~”하는 밝은 목소리. ‘보기 드문 참 살가운 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잠시 후에 기사님은
”왜 그래, 아들.. 힘들어서.. 그래?”라고 하셨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지다가,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도 참다가 눈물이 터져 나왔는지 처음엔 “보고 싶어서 그러지”라고 하다가, 사실은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는 듯했다.
얼마나 힘들면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저렇게 우나 싶기도 하고. 모든 군인들이 다 저렇게 힘들 텐데.. 다들 참으면서 해오는 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는 생각에 안쓰럽고 착잡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 중에서도, 난 유독 기사님에게 눈길이 갔다.
갑자기 우는 아들에 당황하신 기색이 느껴졌지만, 기사님은 다정하고도 밝게, 그리고 침착하게 위로를 건네셨다.
“괜찮아 아들, 다들 하잖아. 금세 괜찮아질 거야.”
“그래 ~ 아빠도 보고 싶고. 밥 잘 먹고 힘내자. 알겠지?”
그렇게 약 5분간의 통화가 끝나고
운전석 너머로 짧은 한숨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기사님은 한동안 묵묵히 운전을 하시다가
“몇 번 출구에서 내려드릴까요?”라고 낮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아마 티를 안 내고자 하셨겠지만,
그 목소리와 뒷모습에서 참 많은 게 느껴졌다.
“아들분이 많이 힘드시겠어요.”라는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럴 때 내가 좀 더 넉살이 좋았더라면, 경험이 더 많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이 적당한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근무 중에 그런 전화를 받고 심정이 복잡하지만 추슬러야 하는 부모의 마음. 우는 자녀보다도 더 마음이 아프지만 의연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그저 가늠만 해 볼 수 있는 그 마음에, 쉽게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저런 마음 모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은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