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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연 Mar 31. 2022

1년 만에 만난 친구의 한마디

나도 모르게 지쳐있을 누군가에게


어릴 땐, 25살이 완전한 어른처럼 보였다.


‘그때쯤이면 사회 초년생에, 직업도 있고, 똑 부러지게 내 일을 하고 있겠지?’ 점심시간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하하호호. 밥을 먹으러 가는 내가 그려졌다.


모두가 “한창 좋을 때지~”라고 하고, 나조차도 잔뜩 기대했던 25살. 그런 나의 25살은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사원증은커녕, 나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막 학기 대학생이었다. 졸업 후엔 바로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인턴 경력도 전무했다. 남들은 하나 둘 사회에 나가는데, 나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분. 몇 년 전에 예상했던 내가 아니라 만족하지 못했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했다.






한창 불안했던 시기를 지나, 1년 만에 한 친구를 만난 날이었다. 오랜만에 본 반가운 친구에게 웃으며 다가갔는데,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왜 내 눈엔.. 네가 좀 지쳐 보이지? 괜찮아?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나는 서둘러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꽤 당황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 스스로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문득 그동안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인정하기보다는 몰아세웠던 날들. 모두 그렇게 살아가니 견디자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맞다 나 지쳐있었지.






친구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트리거가 되었는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이런 일들이 있었고, 마음은 이러했어.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친구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본인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하나 같은 삶은 없지만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기준에 남모를 압박을 느끼기도 하고, 그 기준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하며.



그저 각자의 삶을 살자고. 누군가의 길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가자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동안 나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 괜찮아?라는 말 대신,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쪽을 택했었다. 스스로도 충분히 힘들 텐데, 언급하지 않는 게 상대방을 위한 거라 생각했다. 적당한 무관심은 그들을 위한 나만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마음이 조금 변했다. 친구의 다정한 한마디로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아채고, 서로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것처럼.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하고 위로를 받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무관심보다는 다정한 관심이 아닐까.






어디선가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친구에게, 나도 문득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졌다. 지쳐있는 본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토닥여줄 수 있기를 바라며.



좀 지쳐 보이네. 괜찮아?




날이 좋아서일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느껴졌던 친구의 다정한 마음 때문일까. 어느새 해가 저물었지만, 그날 온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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