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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 "또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은데?"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⑧

  몇 년 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페미니즘 동아리가 위티의 회원조직으로 가입한 이후 유경이 직접 학교에 찾아온 적이 있다. 동아리원들에게 위티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소개해주기 위해서였다. 한쪽 발목에 깁스를 하고 이리저리 헤매다 교문을 절뚝거리며 통과하는 유경의 모습이 한동안은 유경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의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위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경의 솔직하고 날카로운 면모를 알아가게 되었다. 비판적인 의견을 가감없이 이야기 하는 모습이나, 어떠한 사안과 관련해 문제점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순간들을 보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나 의제의 맥락을 벗어난 유경의 고민은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는 감각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위티에서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보낸 유경에게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곳에서 유경은 무슨 기쁨과 슬픔을 찾고 있는지 듣고 싶었다.   



1. ‘현장에 가고 싶다’는 마음에서부터 흘러온, 


경하: 네가 활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언제인지, 그리고 왜 시작했는지 궁금해.

유경: 아마 2018년 말이겠지? 그때 ‘소녀, 소녀를 말하다(이하 ‘소소말’)’을 했으니까. 그땐 학교에서 5년 정도를 이미 살았으니까 좀 갑갑한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아. 그때 우리 학교는 지금만큼 조직이 있거나, 페미니즘 담론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당시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워낙에 좀 바깥 시류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것들과 좀 분리된 공간이었고, 학교라는 공간 자체의 특성도 있고… 내가 여기서, 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라는 마음이 컸어. 그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현장에 가고 싶다’였던 것 같아.

‘소녀, 소녀를 말하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진행했던 청소년 페미니즘 기자단 사업

경하: 그럼 그렇게 소소말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이하 ‘청페모’) 초기, 그러니까 실무를 맡는 사람이 너와 지혜밖에 없었던 그 시기는 어땠어? 너의 답답한 마음이 좀 해소가 되었어?

유경: (당시에 길거리에서 스쿨미투 지지 서명을 모으는 캠페인을 했었는데) 너무 추웠어. (웃음) 그때 생각하면 그 유엔 실천단  했던 게 제일 많이 생각나는데, 그 때 진짜 추웠거든. 너무 추워서 약간 기절하고 싶었어.  

제네바 UN아동권리위원회에 스쿨미투 고발에 관한 이야기를 알리러 가기 전, 한국 시민들의 지지 서명을 모으기 위해 꾸려진 조직

경하: 근데 그럼 재미없었어?

유경: 그때는 뭔가 재미있고 재미없고를 잘 안 따지고 했던 것 같기는 해. 나는 사실 위티 내지 청페모에 있기로 ‘결정’한 적은 없는 것 같아. 결정했다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있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 그냥 사람들이랑 있는 게 즐겁고, 그리고 여기서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이런 감각들이 그냥 그때 그때에 ‘이렇게 하겠냐’는 물음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게 만든 거지, 내가 ‘위티나 청페모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쓰겠다’라거나 혹은 ‘내가 이것을 졸업 이후의 진로로 삼겠다’라거나, 그렇게 결심한 적은 잘 없는 것 같은데? 그 시기는 그냥 나한테 엄청 정신이 없기도 했고. 닥치는대로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느낌에 좀 더 가까워.

오히려 내가 결단했다고 말하게 된 건 굉장히 최근의 일이지.     



2. “잘 될 때만 있는 사람은 아니고 싶었어” 


경하: 결단한 것이 최근의 일이라고 말하는 건 왜야?

유경: 위티는 스쿨미투 고발이 전국으로 번지던 시기에 그 의제에 대한 단발적 관심 속에서 탄생한 단체잖아. 위티에 오는 활동가들은 모두 신생 활동가들이었고. 아무리 스쿨미투가 관심을 많이 받았고 우리가 거기서 유일한 당사자 조직이었다고 한들, 용화여고 판결이 나고 스쿨미투에 대한 관심도가 꺾일 때 결국에는 단체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도 꺼지기 마련이잖아. 스포트라이트가 없으면 사람들도 모이기 힘들고.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제일 잘 될 때였지. 나는 위티가 10년을 하든 5년을 하든 아마 창립 이후 첫 3년이 제일 잘 운영된 때일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스쿨미투, ‘N번방’, 섹슈얼리티 같은 의제들을 가지고 (활동을) 잘 했지만, 제일 많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작년 내지 올해까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건 여러 동료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고. 


(사진) 위티 활동가 6명이 홍대 거리에서 N번방 시위 피켓을 들고 나란히 서 있다. 피켓에는 ‘N번방 가입 교사 교직 OUT’, ‘“지금 당장 여성청소년의 삶을 바꿔야 한다.”’, ‘#N번방_가입자_26만명_전원처벌’,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끝)


  사실 그게 제일 고민스러운 지점이었지. 왜냐하면 올해도 되게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또 나간 사람들도 많잖아. 그런 게 이 조직의 한계점이기도 할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겠지만 또 나갈 텐데, 그럴 때 내가 그걸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어.

  나는 잘 될 때만 있는 사람은 아니고 싶었어. 잘 될 때 있는 건 너무 쉽잖아. 섭외도 많고, 우리의 담론을 사람들이 굉장히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주고, 뭔가 잘 된다는 감각들이 있잖아. 근데 물론 잘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어떤 걸 해도 그런 시기만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서 어쨌든 내가 이 단체를 같이 만든 사람으로서, 잘 되는 시기에만 함께하는 건 좀 비겁한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지.  



3. 상근을 하면, 상근을 하지 않으면 


경하: 너는 창립 즈음부터 쭉 상근을 하다가 올해 잠시 비상근을 하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다시 상근자로 있잖아. 상근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달라? 너는 뭐가 더 좋아? 그냥 전반적인 이야기가 궁금했어.

유경: 상근을 하면 일단 돈을 받는 게 제일 좋지. 내가 돈을 받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고,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거니까. 반대로 내가 상근을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 이를테면 섭외도, 1시간 인터뷰하고 10만원 20만원 주는 거면 다들 하고 싶어 하지만, 돈도 안 주고 한 2시간 인터뷰하는 거면 아무도 하기 싫어 하잖아. 근데 그런 걸 거절하기도 참 애매한 게, 거절하면 다음부터는 요청이 오지 않는단 말이야. 그리고 사실 우리가 일하는 시간만큼 상근비를 다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돈이 없기 때문에 주말이나 이런 때도 (돈 안 받고) 그냥 나오는 거고.

상근을 안 할 때는, 별도의 직업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돈을 안 받고 일을 해야 된다는 게 제일 어려운 점일 것 같아. 나도 알바를 하면서 활동을 할 때는 내 생활비를 벌어야 되니까 돈 버는 일을 더 먼저 하게 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연락 같은 것도 챙기기 어렵고.

근데 ‘활동이 노동인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스럽기는 해. 상근자가 노동을 해서 돈을 받는 거라면, 비상근자들은 노동을 안 해서 돈을 안 받는 게 아니잖아. 나는 상근을 하면서, 그냥 우리가 일을 하니까,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사무적인 일들을 다 처리하고, 회계를 하고, 메일 답장하고, 이런 것들을 하니까 돈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사실 시기에 따라 비상근자가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럴 때 우리가(상근자가) 활동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는 건 좀 이상한 말인 것 같아. 차라리 상근자가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서 돈을 받는다고 하면 조금 더 맞는 말일 수 있을 것 같아. 상근자가 활동을 더 많이 해서, 혹은 일을 더 많이 해서 돈을 받는다기보다는 그 사람들이 그냥 책임을 지고, 리스크를 감당하고, 사람들이 안 하는 거 하니까, 그리고 다른 것을 하지 않고 위티만 하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돈을 지급하는… 모르겠어.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운데 단순히 활동을 노동으로 치환해서 ‘상근자들이 노동을 해서 돈을 주는 거다’라고 하기에는 조금 말에 어폐가 있는 느낌인 거지.  



4. 넓어진 지평, 어려워진 질문 


경하: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난 항상 너를 보면서 유일하게 지혜한테 비판을 할 수 있는, 혹은 하는 사람이라고 느꼈거든.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렵지만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 지혜가 청페모부터 시작해서 위티 창립, 공동대표, 사무처장까지 했으니 이곳에서 갖는 특수한 지위가 있긴 하잖아. 네가 여기에 지혜만큼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유경: 음… 거기에는 되게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을 것 같은데, 첫 번째로는 그냥 내가 지혜 다음으로 위티 활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는 지혜가 좀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 두 번째는 그냥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천성적인 면들이 좀 있는 느낌? 나 학교에서도 그랬거든. 항상 미움 받는 포지션이었지. 다들 좋다고 하는데 괜히 ‘전 싫은데요? 왜 그렇게 해야 돼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어. 세번째로는,.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 지혜가 ‘이렇게 하자’라고 했을 때 늘 모두가 동의하면 그게 그대로 관성이 되잖아. ‘그래, 지혜가 하는 말이니까 맞겠지’라고 모두가 느낄 때, 그냥 딴지 한번 걸어보는 거지. 좀 습관적으로 경계하려는 마음.

  근데 동시에 또 이런 것들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도 있어. 이를테면 ‘왜 이런 건 나나 지혜만 하는가?’ 외롭다거나 이런 문제가 아니고, 그러니까 왜 우리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는 의견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것도 있겠지만, 뭐 그냥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서 혹은 지금 말하기 좀 부끄러워서, 이런 요인들도 있을 수 있잖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티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나 지혜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을 테니까 내가 그들보다는 뾰족한 지적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는 것 같아. 내가 신입 활동가였을 때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 그니까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이 좀 결합되어 있어. 

경하: 그럼 혹시 청페모 때부터, 또 위티의 시작부터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이곳에서 활동하는 동안, 너에게 달라진 점이 있어?  

유경: 나는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생각의 지평이 많이 넓어진 것 같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서 위티에 왔지만 청소년인권에 관해 많이 배우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위티에 있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비판적 성찰 같은 자질들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은 느낌도 있어.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위티의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할지, 위티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좀 재미있었던 것 같아. 그게 내가 논평을 쓴다거나 하는 정세적 활동을 많이 했던 이유인 것 같고.



유경이 공저로 참여한 책. 여성청소년의 삶에서 시작하는 정치를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책 보러가기�)  

(그림) <’몫’과 ‘권리’를 가진 사람, 우리는 청소년 시민입니다> 책 일러스트 표지. 오른쪽 상단에 파란 글씨로 ‘박지연, 배경내, 이묘랑, 이은선, 최유경 지음’ 오른쪽 하단에 파란 글씨로 출판사명 ‘곰곰’. 주홍 빛깔로 그려진 청소년이 책 제목이 적힌 파란 종이를 얼굴 앞에 들고 있는 모습. (그림 끝)



경하: 네가 그렇게 변화하는 동안 위티는 어떻게 바뀐 것 같아? 다르게 체감되는 것들이 있어?

유경: 나 말고 위티에 축적된 것들도 있지. 사람들, 혹은 어떤 순간들, 내부의 문제 제기들… 이를테면 우리가 스쿨미투, ‘N번방,’ 총선, 의제강간 연령 상향처럼 중요한 시기마다 쌓은 논의들이 축적됐을 거고. 시기가 달라진 것도 있는 것 같아. 청페모 시작할 때는 스쿨미투 때니까, 교내 페미니즘 같은 게 엄청나게 이슈일 때였다면 지금 그게 좀 덜한 국면이지. 우리가 여력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지. 다른 단체들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일도 많아지고, 위티에서 일을 하지만 위티 외부에서 하는 활동들도 생기고, 그러면서 좀 더 챙겨야 될 게 많아진 느낌?  

경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너는 청페모에 오면서 기대했던 바가 뭐였어?

유경: 그때는 뭔가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고… 내가 괴짜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다는 감각이 컸던 것 같아. 그니까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그냥 어떤 거에 관심이 생기면 누구랑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잖아. 꼭 정치적 의제가 아니어도, 그냥 이를테면 어떤 책이라든가, 영화라도. 그땐 그런 감각이 컸던 것 같아.

경하: 그럼,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충족이 된 것 같아?

유경: 그러게. 근데 논의가 계속 어려워지기 때문에… 충족이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는 것 같아. 활동을 시작하던 당시에 내가 느꼈던 궁금증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얘기했지. 처음 집행위원회 같은 데서는 그런 얘기 정말 많이 하잖아. 억압적인 학교 싫고, 성차별 화나고, 이게 내 잘못이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다, 불평, 성토… 그런데 점점 어려워지는 질문들이 있잖아.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어보는 것들도 많아지고…. 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이 계속 생긴다는 점에 대해서는 또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은데?


(사진) 유경이 빔프로젝터 화면 앞에서 문서집과 마이크를 들고 발표하는 모습. 화면에는 “보고안건 1. 준비위원회 활동 보고” 문구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포스터 그림이 나와 있다. (사진 끝)




유경은 한 가지 질문에도 서너 가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위티에서 보낸 오랜 시간과 그간의 깊이 있는 고민이 느껴지는 답변들이었다. 유경 스스로의 삶뿐만 아니라, 단체와 활동에 대해 꾸준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온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런 만큼, 유경이 “계속 어려워지”는 논의들을 언급하며,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이 마음에 남았다. 유경은 앞으로도 어려운 질문들을 헤쳐나가며 답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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