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경하, "내가 여기 왜 남아있지?"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⑤

 스쿨미투는 교사-학생 간의 수직 구조에 의해 묻혀왔던 학내 위계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고 사회의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위티는 전국 스쿨미투 집회, 성폭력 가해 교사와의 법정 공방, UN아동권리위원회에 한국의 스쿨미투 상황을 알리러 가는 등 여성 청소년이 ‘피해 당사자’를 넘어 사회를 바꾸는 ‘정치적 주체’임을 드러냈다. 이때 UN에 갔던 사람이 경하라는 것은 나중에 위티에서 활동하며 알게 됐다. 경하는 학내 페미니즘 동아리를 운영하다가 2018년 11월,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전국 스쿨미투 집회 스태프에 참여하면서 (위티의 전신인)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 합류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 만 18세 선거가 시행된 21대 총선에서 청소년참정권을 주제로 ‘안녕, 국회’ 대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따박따박, 경계넘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이다. 

 경하와 처음 대화를 나눈 것은 위티의 비공식 뜨개 모임에서였다. 경하의 취향과 취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고, 위티의 굵직한 사업을 해왔던 경하에게 위티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경하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했다. 위티 바깥에서 위티를 바라볼 때 활동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되었기에 경하의 고민은 의외였는데, 우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계넘기: 위티의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육활동가 양성 프로젝트
    따박따박: 위티의 청소년 페미니즘 소식지



1. “내가 활동가인가?”


아고: 경하님께서 속한 공간에서 ‘활동’이라는 건 어떤 의미로 와닿으셨나요?

경하: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한데 고등학생 때는 활동이 저의 학교에서의 삶과는 엄청 분리된 무언가로 느껴졌어요. 제가 학교 안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해도 되게 탁상공론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학교에서 할만한 것들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거나 기사를 스크랩한다든가 어딘가 학업적인 느낌의 일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집회에서 하는 일들은 다 너무나 제가 학교에서 해오던 말과 글로만 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경험인 거에요. 집회를 만들고 퍼포먼스를 생각하고 물품을 준비하고… 그래서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집회 이전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건 활동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들었고 학교 바깥에서 하는, 사회 이슈와 관련된 무언가들이 활동이라고 느껴졌어요. 

아고: 경하님이 자신을 활동가로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경하: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 있고 활동이 엄청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활동가라는 건 왠지 전업 활동가여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보통 자신을 활동가라고 칭하는 이들은 상근을 하거나 되게 오랜 시간 자신의 노력과 자원을 쓰고, 어떤 의제에 엄청 몰입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러니까 활동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활동이라고 느껴지는데, 전 사실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활동가인가? 싶은 생각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제가 기타를 친다고 해서 저 스스로를 기타리스트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취미로 글을 쓴다고 무조건 작가라고 하지 않고. 활동은 나의 사이드프로젝트 정도의 무언가인 것 같아서, 저를 활동가라고 부르기 어려운 느낌인 것 같아요.



2. “여기서밖에 못하는 얘기”


[사진] 2018년 11월 3일 학생의 날 기념으로 열린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서울 시청 도로에서 청소년들이 “#WITH_YOU” 모양대로 포스트잇이 붙여진 현수막과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출처: 위티)[사진 끝]


아고: (위티에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경하: 활동을 하게 된 동력. 이건 시기마다 좀 다른 것 같은데 일단 처음 스쿨미투 집회와 UN 그 시기는 그냥 재밌었던 것 같아요. 학교와 대비되는 공간과 일들이었고, 제가 관심 있고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일과 관련해서 그동안 주어지지 않았던 창구가 생기는 느낌이어서, 해방감이 들고 재밌었어요. 그리고 나서 ‘안녕, 국회’ 이후 활동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한국의 2030 페미니즘 담론이 너무 지겹게 느껴졌어요. 맨날 엇비슷한 얘기를 하는데 거기에 청소년의 목소리는 없으니까. 근데 그 와중에 나온 총선 기획이 너무 위티다웠고, 여기서밖에 못하는 얘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위티에서 나오는 컨텐츠나 글들이 너무 마음에 들고 와닿아서 되게 자연스럽게 (위티에서) 다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영상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wG-L431eQMM&feature=youtu.be

[그림] ‘안녕, 국회’는 2020년 위티의 총선 대응 프로젝트로 2020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과 청소년 활동가들이 만나 각각의 청소년 의제들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위티를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분홍 노랑 초록색 그라데이션 배경에 흰색 큰 글씨로 “청소년 참정권은 이제 시작이다”라고 적혀 있다. 상단 왼쪽에 안녕 국회 로고, 오른쪽 상단에 위티 로고가 있다. 그 하단에 청소년활동가 양말, 경하, 유경이 손을 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옆에 검은색 작은 글씨로 “청소년은 공부해야 된다고?”, “이건 권리라구요!”라고 적혀있다. (출처: 위티)[그림 끝] 


 그 이후의 시기에는 솔직히 말하면 ‘책임감’이 가장 컸어요. (그 당시 동시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많았기에) 일이 엄청 많고 바쁘고, 단체 내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생기고, 뭔가 다 같이 으쌰으쌰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때  여기서 발을 빼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그것만 있었던 건 아니고 당연히 위티에서만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되게 소중하고, 때론 버블 같을지라도 안전하고, 굳이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공간의 감각이 좋았기 때문에 남은 것도 있죠. 하지만 ‘동력’이라고 했을 때는 책임감이 큰 것 같아요. 


아고: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경하: 기억에 남는 장면 너무 많은데… 우선은 엄청 열심히 일했던 순간들이 먼저 생각나요. 예를 들면 경계넘기(위티의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육활동가 양성 프로젝트) 할 때 주 2회씩 회의하고, 주말에 참여자들이랑 만나기 전에 사무실에 먼저 모여서 오전에 세미나 준비하고, 끝나고 다들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다들 지쳐서 사무실 책상에 나가떨어져 있고… 따박따박(위티의 청소년 페미니즘 소식지) 만들 때 마감에 쫓기면서 새벽에 편집하던 거. 바쁘고 정신없던 순간들이 생각나고. 또 보드게임 했던 거. 사무실에 모여서 뭐 시켜 먹고, 둘러앉아서 회의를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사무실의 풍경도 되게 기억에 많이 남고요. 그리고 제가 스쿨미투 집회 때 퍼포먼스 담당을 했었거든요. 거기서 참여자들에게 칠판에 혐오발언을 적어달라고 한 다음에 엑스를 그리는 그런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그걸 긋고 딱 뒤를 돌아봤더니 사람들이 막 와~ 환호를 했어요. 그게 너무 그때는 짜릿하고, 실감도 잘 안 나지만 되게 좋았던. 해방감을 느꼈던 순간이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오래. 


[사진]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에서 경하가 교실 내 여성혐오 발언이 적힌 칠판을 지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무대 위 초록색 칠판을 두 사람이 들고 서 있다. 청소년활동가 경하가 칠판에 적힌 여성 혐오 발언 위에 빨간색 페인트로 X를 그리고 있다. [사진 끝](출처: 위티)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위티라는 공간, 그리고 거기서 만난 존재들이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줘서 힘이 됐어요. 어… 저는 소속감을 잘 안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위티가 그중에 그나마 내가 소속된 공동체라는 감각을 제공해준 것 같아요. 우리가 어려웠지만 함께 해냈다는 마음이 들 때… 그러니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저에게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선 내 솔직한 심정은 아껴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위티에서는 뭔가 날 것의 마음들을 좀 보여줘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평가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요. 어떤 면에서는 저랑 되게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인 것 같기도 해요. 제도권 학교에 내내 있었고,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갔고. 하지만 그렇다고 대기업에 가고 취직을 잘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고, 이런 사회 활동, 심지어 청소년 활동 곁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 (웃음)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소속감 혹은 연결감을 만드는 데 중요했던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처음 만난 곳이 위티였거든요. 


3. “활동이 있기 전에 사람이 있어야지”


아고: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지치고 환멸 난다 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건 없었나요?

경하: 있었죠. 당연히(웃음) 바쁘고 일을 많이 하고 했던 순간들 속에서… 늘 일을 하는 사람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어요. 그런데 일을 계속 맡게 되는 게 힘든 것도 있지만,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어려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 같이 일을 같이 바쁘게 하는 사람들의 기준이 너무 높은가 하는 생각도 하고. 우리가 너무 빠르고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사람들이 약속한 일을 해오지 않을 때 우리가 답답해하는 것이 사실은 지나친 욕심에서 나온 것인지? 그렇지만 이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마음을 얼마만큼 쓰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건가? 책임은 어떻게 나눠 져야하는 것이지? 정말 개인적으로는, 제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런 생각을 주로 언제한 것 같냐면.. 정신없이 일을 하고, 내부에서는 어려운 문제와 고민들이 계속 생기는데, 그래서 저의 에너지는 정말 많이 쓰이는데 그러한 시간들이 저한테 배움이나 성장의 기회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혹은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이 더 나은 곳이었으면 좋겠지만, 지속 가능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기도 하거든요. 같이 활동했던 친구가, “활동이 있기 전에 사람이 있어야지! 사람이 없으면 활동도 없어.”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그 말에 공감이 돼요. 내가 여기 왜 남아있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 마음이 여러모로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단체에 대한 책임감과… 그러다가 왜 사람들은 위티에게 돈을 주지 않는지로 생각이 이어지고… 그 당시에 관련해서 문제 제기가 한 번 정도 있기는 했어요. 운영진으로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데 확인을 잘 안 한다거나, 피드백 달라고 문서 올렸는데 읽어보지도 않고, 회의 늦고… 이런 것들은 사실 능력이나 자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만큼 이 일에 마음을 다하고 싶은지의 문제인 것 같다는 얘기와… 장문의 메시지와… 그런 것이 있었고. 명확한 결론은 안 났지만, 작년 이후로 어쨌든 그냥 좀 더 느슨하게 가자는 이야기들은 자주 하는 것 같아요.


4.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경하: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제가 하는 활동의 의미에 대해 메타적으로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상에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재밌어서 했고, 학교 다니기만도 바빴고요. 근데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가서 다시 위티 활동을 시작하고 나선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자주 돌아본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까 활동에 제약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저는 스무 살 이후에 활동을 하는 것이 한편으론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동에 쓰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인가라는 고민 때문에요. 고등학교 땐 학교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너무 답답하니까 참여한 게 크지만, 솔직히 대학에 가고 나서는 청소년기의 문제에 대해 그런 강렬한 감정은 잘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왜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자꾸 고민하게 돼요. 비청소년이 청소년 의제에 대해 말하는 게 이상하거나 잘못됐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저 스스로에게는 더 이상 개인적인 동기가 없는 느낌이에요. 


아고: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경하님께는 어떻게 받아들여지셨나요? 

경하: 당사자성과 관련한 중요한 논의점들이 많은 건 알지만, 저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청소년이 아니어도, 우리가 모두 어느 순간에는 청소년이었거나 청소년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다들 할 말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청소년기를 지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운동이든 꼭 그 특정한 집단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기도 하고요. 저에게 당사자성이 중요했다면, 그건 활동에 대한 감정적 동기가 없어진 것과 관련해서였을 거에요. 학교가 저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제가 청소년일 때와 아닐 때의 경험이 너무 다르니까요. (당사자 운동으로) 청소년 운동이 잘 안 되는 큰 이유가 이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 시기가 지나면 과거의 문제가 되니까. 저부터도 고등학교 다닐 때는 사람들이 대학 가면 중고등학교 때 힘들었던 걸 다 까먹고 모른 척하는 게 너무 짜증이 났는데, 제가 그 사람이 된 거 같거든요. 내 삶에서 이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 얘기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게 가끔 양심에 찔려요. 제가 너무 싫어했던 모습이라. 


5. 활동-그리고 다음


경하: 저는 엄청 학교 다니기 싫어하면서 초중고를 너무 힘들게 보냈는데,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어느 순간엔 체념하고 살았거든요. 지금 위티에 남아 있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를 했지만, 어쨌든 지금껏 위티에서 같이 했던 이야기들 혹은 위티가 꺼내는 이야기들이 그런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세상이 별로였다는 걸 확인받는 느낌이어서. 그리고 그 시기와 지금의 제가 분리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상기하게 되고요.


  요즘은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방식, 혹은 그런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 저에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활동이 저랑 잘 맞다고 생각했고, 또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위티 활동을 쭉 하다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시민단체 특성상) 새로운 정치·사회 사건들에 빠르게 대응을 해야 하다 보니, 무언가를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해본다던가 할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하고, 시민단체 활동이 대개 정해진 틀이 어느 정도 있잖아요. 논평 쓰고 기자회견 하고 집회 열고… 근데 그런 걸 잘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요. 또 위티처럼 날카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체는 보통 활동 판에서도 굉장히 소수의 입장에 있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불안정함과 흔들림이 있는데, 그걸 제가 감당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많이 들고요. 이건 특별한 시기가 있다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체감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 ‘marksearch’는 이웃과의 대화를 통해 캘리포니아 지역문화를 보존하는 아카이브형 공공프로젝트다. 한 사람이 등받이 의자에 앉아 파란색 책을 읽고 있다. 책에 하얀색 글씨로 ‘BLACKS IN OAKLAND:1852-1987’, ‘Donald Hausler’, ‘COMMONS ARCHIVE’라고 적혀있다. (출처: marksearch.org) [사진 끝]


  미국에 와서 지역 기반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레퍼런스들을 많이 보게 돼요. 만난 분들 중에 마을 아카이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marksearch’는 이웃과의 대화를 통해 캘리포니아 지역문화를 보존하는 아카이브형 공공프로젝트다. 


(그분이) 동네 길가에서 부스를 차려서, 사람들한테 당신이 기억하는 동네의 풍경에 대해 말하거나 적어달라고 했대요. 그러면 사람들이 “매주 화요일에 여기 오는 수리공 아저씨가 있어. 근데 그 사람 트럭이 무슨 색깔인데…” 이런 걸 적어줬대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엄청 많이 모여서, 책을 몇 권씩 만들어서 동네 도서관에 비치했다고 해요. 지역 도서관에서도 적극적으로 그 사업을 지원해줬고요. 그 아카이브를 위한 방을 따로 내줄 정도로요. 그 사업과 관련해서 기금을 모으려고 축제도 했는데, 동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정말 인산인해를 이루고 같이 웃고 노래 부르고 정말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동네의 퀴어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 그 지역의 역사적 퀴어 인물을 연기하는 퍼포머가 사람들을 이끌고 마을 투어를 한다든지, AR 앱을 이용한다든지… 이곳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점이 재밌어요.


아고: 경하님께서는 요즘 관심 있는 분야가 있을까요? 위티 활동과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어떤 활동에 눈길이 가시는지 궁금해요!


[사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그중에 나한테 잘 맞고 나에게 재밌다고 느껴지는 게 무엇일까 알아보는 중이에요.” 무대 위 반짝이는 장식이 달린 벽이 세워져 있다. 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사진: 경하 제공) [사진 끝]


경하: 요즘 제가 꽂혀 있는 키워드는 퍼포먼스와 장소, 땅, 공간 이런 것들인데요. 음… 이전까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주제가 흥미로운지를 많이 탐색했다면, 요새는 그것들을 어떤 형태로 정리하고, 어떻게 전하고 싶은지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시민 단체 활동을 하거나 학술적인 글을 쓰는 것처럼 저에게 익숙한 방법이 아니라, 연극 같은 어떤 예술 작업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워킹투어처럼 현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하는, 새로운 방식들에 대해 배우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다양한 레퍼런스를 만나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그중에 나한테 잘 맞고 나에게 재밌다고 느껴지는 게 무엇일까 알아보는 중이에요.




 경하는 위티라는 단체가 가진 메시지와 관점이 중요하고 세상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화할 공간이 부재했고, 위티에서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느꼈던 ‘세상을 바꾸는 감각’과 ‘해방감’이 활동 동력으로 크게 작용했다. 경하는 지난 활동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어떤 이야기에 관심 있는지 알았고 그다음은 자신에게 잘 맞고 재미있는 방식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경하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미국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을 들려주었다. 재미있는 작업을 기획하며 살고 싶다는 경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 기획들이 기대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민경, "나는 진심이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