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신(神)과 함께

4. 이직의 기본 조건 (1) (ft. 단조롭고 반복적인 업무)

by 다니엘 김

빠른 이직의 이유와 시기

최근 공무원, 대기업 가리지 않고 퇴사를 선택하는 MZ세대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신입사원 평균 11개월 걸려 첫 취업을 해도 17개월 만에 퇴사를 한다는 내용의 이 기사는 보수, 근로 시간 불만족을 퇴사의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특히, MZ세대의 경우, 퇴사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식과 함께 힘들게 취업을 해도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으면 사직을 망설이지 않으며, 단조롭고 반복적인 업무로 인한 역량 성장 결여기업 내 세대 갈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아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원하는 것이라면 빠른 태세 전환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오전 8시~9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6시가량 퇴근을 하게 되는데 평균 8~10시간 정도 회사에 머물게 된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눈뜨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출퇴근과 업무시간에 쏟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직장인의 하루 일과

대학 동창 중 하나는 입사 5년 차가 되던 2010년, 2년 여 간의 심사숙고 끝에 자신의 적성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건설사와 작별하고 군무원 시험에 도전하였다. 신혼살림까지 막 꾸렸던 그 친구에게 퇴사 전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었지만, 보란 듯이 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해 매우 행복한 얼굴을 하고 동창모임에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차분한 성격에 안정적인 생활을 선호했던 그에게 다소 거친 건설 현장 관리 업무, 지방 현장 발령, 잦은 해외 출장 등은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세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 식을 올린 가장이 어떻게 그 큰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겠지만, 어쩌면 그 친구는 하루라도 더 빨리 결단 내리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자신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어렵게 입사를 했지만 본인의 적성과 기업, 부서, 업무가 상극(相克)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의사결정을 내려 새로운 직업을 다시 찾는 것 또한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전공과 딱 들어맞는 기업에 입사를 했고 업무 전반적으로도 적성에 맞을 것 같은데... 당장 신입 사원에게 주어지는 단조롭고 반복적인 업무 또는 기업 내 세대 갈등 때문에 퇴사를 고려 중이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업무의 필요성

2005년 11월, 첫 입사와 동시에 평택 FED 미군 기지 군 막사 및 간부 사무실 신축 현장으로 발령을 받은 나는 매일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만 주어지는 탓에 적잖게 당황을 하게 되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라고 한다면 공종별 공사 진척 현황 체크, 일일 출력 인원 및 장비 체크, 일일 작업 일보 (Daily Report) 작성, 공사 사진 촬영, 작업자 안전 규정 준수 여부 확인, 각종 서류 작성 및 보조 업무 등이었다. 간혹 VIP가 현장을 방문한다고 하면 빗자루를 들고나가 현장 청소를 하기도 했고, 외부 창고에 길게 늘어서 있던 외국산 자재를 정기적으로 정리하고 점검하는 것 또한 나의 중요 업무 중에 하나였다.


입사하면 근사한 일을 맡아 성과를 내고 인싸가 되는 상상 속의 내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내가 이런 일 하려고 힘들게 취업했나?', '시켜만 준다면 나도 선배들처럼 주도적으로 내 업무를 이끌어 갈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본사 또는 다른 현장에 근무하고 있던 대학 선배들을 만나 신세 한탄을 했었는데, 대부분 선배들의 반응은 데자뷔 (deja vu)처럼 너무 비슷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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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분가량 내 이야기를 듣는가 싶다가 어느새... 전쟁보다 더 험난했던 선배들의 신입사원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돌아오는 술잔에 만취가 될 무렵... 택시에 몸이 던져지고... 이내, '조금만 참고 버텨봐, 좋은 일 있을 거야!' 하는 선배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리며 시체가 되기 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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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으며 2년 간 참고 버틴 끝에 생애 첫 번째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해당 프로젝트는 완공 후, 쟁쟁한 건설사들을 제치고 평택 FED 최우수 시공 현장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크게 기여한 바가 없고 그저 현장 막내가 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완공 2주 전, 건축기획팀으로부터 두바이 현장 발령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드디어 공학도의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설렘과 과(過)한 의욕을 가슴 가득 채우고 두바이에 입성하게 되었다.


호봉은 올랐지만 사원이라는 동일한 직책에 건축 시공이라는 전과 같은 직무를 맡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책임자께서 기대보다 훨씬 많은 업무량과 책임을 지어 주셨는데 바로 그때부터, 지난 2년 간 매일 반복했던 단순한 업무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2007년 11월 1일 Dubai Oasis Tower 현장 - 발주처로부터 Handover 받았을 당시 현장 전경

출근과 동시에 습관처럼 체크하던 공사 진척률은 내일, 다음 주, 한 달 후 공정을 미리 예상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일일 출력 인원 및 장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일이 하루에 진행될 것인지 대략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디에 쓰이는지도 몰랐던 외국산 자재가 현장에 투입/설치되는 것을 모두 확인했던 경험은 자재의 종류뿐 아니라 투입 시기까지 개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되었다. 조금만 참고 버티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던 선배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힘들어했지만 지난 2년의 경험은 내 업무 능력의 근간(根幹)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업이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중차대한 업무를 맡기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학문과 실무 사이


첫째, 대학에서 배운 학문과 실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 역학 (전공) 시험에 나왔던 철근 인장강도 구하는 방법과 철근비, 교수님께 설명 듣고 사진으로만 접했던 Post-tension 공법, 고층 건물에 주로 쓰인다던 System form, 자격증 취득을 위해 암기했던 실내 마감 순서...


개인적으로 실무에 이론을 접목시켜 미흡하지만 기술자의 눈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볼 수 있기까지는, 첫 입사 이후 오롯이 한 현장을 경험한 2년이란 시간 이후부터였다. 교재에서 봤던 펌프카가 새벽같이 현장에 들어와 Boom을 펴더니 레미콘 트럭이 싣고 온 6m3의 레미콘을 붓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문장 앞글자를 따서 외웠던 천정 마감 순서는 튼튼하게 작업 잘 됐다며 원숭이처럼 달대에 매달려 보던 반장 덕택에 이제 굳이 암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현장부터는 첫 현장에서 했던 실제 경험과 대학시절 내내 공부했던 전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Synergy 효과를 내게 되었다.


변수

둘째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변수(變數)이다. 기업 내/외적으로 발생하는 변수는 미리 예상하지 못하거나, 발생한 이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크고 작은 손해로 직결되는 Risk로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상 큰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업은 신입사원으로 하여금 가) 비교적 중요도가 낮은 업무를 담당하면서, 나) 소소한 변수를 경험하고, 점차 업무의 양과 중요도를 높여가는 것이 곧 a) 실수 및 실패의 리스크를 축소하는 한편 b) 1~2년 후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진 구성원 육성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신입사원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라는 생각보다는 1) 가장 기초적인 업무를 익히고, 2) 더더욱 중요한 업무를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여기면 되겠다.


이직의 기본 조건

결론적으로 누군가 어렵게 성공한 취업인데 단조롭고 반복적인 업무가 본인을 힘들게 한다면 그래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면... 적어도 업무의 한 term (*Term이 비교적 짧은 직종의 경우, 약 2년 최소 1년 정도)이 지나가는 시간 되도록 긍정적으로 업무를 지속해 보고 두 번째 Term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바라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수많은 기업들이 쟁쟁한 인재들을 뽑아 놓고 mindless 한 것처럼 보이는 업무를 맡기는 것은 기업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생에 첫 직장을 갖게 된 신입사원에게 필수(必須)적인 것이다.


학문과 실무를 이리저리 조합해가며, 크고 작은 리스크를 감당해왔던 최소한의 Term (시간) 이후, 신입사원의 딱지를 떼고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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