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엽시계 Jul 19. 2022

그렇게 그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돼지의 왕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영웅이 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마음속 영웅들의 삶을 갈망하기도 하고 그 들의 삶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는 가졌고 내가 감히 하지 못한 일은 그는 해낸다.     

한국 사람 누구나 영웅으로 추앙하는 이순신 장군님이나 세종대왕님 같은 분들은 흘러간 역사 속의 인물이니 마음속으로 기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현재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 나의 영웅이라면?

그때는 마음속으로만 기리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경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영웅을 그냥 좋아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영웅에 심취하여 정도를 벗어났을 때 문제는 발생한다.     




특정 정치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정치인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몇 있지만 그냥 좋아하고 마음속으로 응원할 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아마 나처럼 정치인을 마음속으로 응원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광적으로 정치인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팬클럽을 만들어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해당 정치인은 절대선이며 나라를 구할 영웅이다.

자신들의 영웅과 배척점에 있는 경쟁자는 그들이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다.     

외부의 어떠한 비판에도 굴하지 않는다.

나의 영웅이 저지른 실수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보인다.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고 한들 그건 필요악이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른 이들이 보면 이처럼 해괴한 일은 없다.

같은 행위의 결과인데도 다른 이한테 적용하는 잣대와 자신의 영웅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천지차이다.


왜 그러냐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영웅은 범인(凡人)이 아니고 이 고된 삶의 지옥에서 나를 구원해줄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 종교처럼 영웅은 이제 그들에게 종교가 되었다.     


자! 이제 그 누구도 나의 영웅 아니 나의 신을 비판할 수 없다.

감히 나의 신을 비판해?

나의 신을 비판 한 자들은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마다.      


자신들의 성스러운 신을 비판하는 자들은 심판의 대상이다.

한 신도가 외친다. “신도들이여! 광장으로 모입시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 행진을 한다.

자신들의 앞을 저지하는 경찰은 악마를 추종하는 미친개들이다.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다.

경찰을 향해 휘두르는 작대기는 그들에게는 악마를 쫓아낼 때 사용하는 십자가다.     


영웅은 이제 그들의 모든 삶을 좌지우지하는 신이 되어 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논리와 행동에 도취되어 그들의 신이 된다.

영웅은 이제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은 진리요 법이니 거칠 것이 없다.

법을 어겨서 수감되어도 당당하다.

교도소 가는 길에 신도들이 모여들어 판의 부당함을 외치며 응원을 한다.

그는 이제 핍박 속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된다.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광기에 사로 잡힌 집단으로 취급한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똘똘 뭉치며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해주리라 믿었던 그들의 영웅은 이제 없다.

영웅은 이제 그들 안에, 그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어찌 보면 그들 스스로 영웅을 자신들의 집단에 가둬버린 꼴이다.    


 



“돼지의 왕”이란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한 중학교 안에서 소위 일진 아이들이 학교를 장악한다.

 일진 아이들이 무서워 누구도 그들에게 맞서지 못한다.     


어느 날 “김철”이라는 아이가 반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일진을 제압한다.

철이는 일진들을 모두 제압하고 심약하고 나약했던 종석과 경민이의 우상이 된다.

자신들의 영웅이고 우상이 된 철이를 종석과 경민은 따라다니며 모든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계속된 싸움과 사고로 철이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철이는 이제 일진과 맞서지 않고 학교돌아가는 현실을 택하기로 한다.     


그런 철이의 모습을 종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철이는 자신과 같은 비굴한 돼지들을 어둠에서 구원해 준 “돼지의 왕”이었다.

그런 철이가 자신처럼 불의에 굴복하는 비굴한 돼지가 되는 것이 싫었다.


종석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철이를 학교 옥상에서 밀어버린다..

철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철이는 죽었지만 종석과 경민한테 영웅으로 남았다.

죽는 순간까지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영웅,

자신들처럼 비굴한 돼지들을 구원해 준 “돼지의 왕”으로 영원히 남은 것이다.     




지금 당신이 믿고 따르는 당신의 영웅을 신격화하고 계신가?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당신의 영혼을 깨우는 복음으로 들리시는가?

당신의 영웅을 비난하는 자들은 세상모르는 우매한 중생이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당신의 영웅을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철이를 옥상에서 밀어서라도 자신의 영웅을 지키는 종석이가 되고 싶으신가?


영웅을 향한 당신의 맹종,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로 인해 당신의 영웅이 자신의 권력에 취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괴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가 괴물되더라도 당신에는 여전히 영웅으로 남아 있겠지.     


당신의 영웅을 지키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를 맹종하는 것이 아니다.

영웅을 감시하고 그의 실수에 아낌없는 충고를 해주시라.

그것이 당신의 영웅을 당신만의 영웅이 아닌 우리 모두의 영웅으로 만드는 것일 테니까.


영웅을 만드는 것도, 영웅을 괴물로 만드는 것도 바로 당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낡은 사진첩 속의 사진으로 남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