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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니 Jul 13. 2022

정신과 의사는 마치 살아있는 MBTI 검사지와 같다.

만 스물 셋 살 정신과 방문기 (3)

나는 내가 정신과에 다닌다는 것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정신과에 다녀온 그 주에, 나는 바로 친한 친구들 모두에게 말했다.


"나 정신과 다녀왔어."


정신과를 갔다 왔음을 고백하는 내게 친구들은 물었다.


"어땠어?"


나는 고심하다 대답했다.


"음, 의사가 마치 살아있는 MBTI 질문지 같았어."


지금도 스스로 보기에 최고의 비유라고 생각한다. 질문지 보다는 결과지라 봐야 정확하겠지만.


의사는 정말로 살아있는 MBTI 결과지와 같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내용의 꿈을 꾸는데요. 그 꿈의 내용은 샬라샬라......" 하고 말을 하면,


의사는 "A의 내용의 꿈은 정신의학과에서 봤을 때 B라고 해석합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며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당시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강아지는 17살로 올해 3월 별이 되었다.) 나는 의사에게 내가 얼마나 강아지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강아지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인지, 동시에 강아지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토로했다.


내 말은 들은 의사는 대답했다.


"보통 정신의학과에서 강아지는 C를 의미합니다. C는 환자 분의 어쩌고 저쩌고... 내면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이었다.


내가 어떤 것 (A)에 대해 얘기하면, 의사는 그것이 이런 것 (B)를 의미한다고 대답했다. 어떤 것은 납득이 갔고, 어떤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떤 것은 설득되었다.


그 중 나는 의사가 강아지에 대해 말한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의사는 정신의학과적인 면에서 볼 때 강아지가 나 스스로와 돌아가신 나의 엄마 등등을 의미한다고 했다. 나는 그 부분이 싫었다. 


다른 사람들을 강아지를 강아지 그 자체로 사랑해주는데, 왜 나만 강아지에 다른 존재를 투영해서 본단 말인가? 나도 우리 강아지를 강아지 그 자체로 사랑해줄 수는 없나?


한 번은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시니까 강아지를 키우는 의미를 몰라서 그렇게 말하시는 것 아닐까요?"


내 말에 의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정신의학과에서 강아지는 ......를 의미하고, 그건 ......"


아, 또 시작됐네.


내가 불편해하는 티를 내자,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하셨다.


"제가 말하는 모든 것은 그저 추측에 지나지 않아요. 그저 정신의학과에서는 이 문제를 이렇게 본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 말을 듣고 불편하셨거나, 다른 생각이 들으셨다면 그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시면 돼요. 그럼 제가 이야기를 듣고 환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게 환자 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건 꽤나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정신과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말에 선생님이 대답을 하면, 그것을 생각해보고 다시 대답을 했다.


"그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제 내면에 부모님께 칭찬받길 원하는 어린아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아니에요. 왜냐면 그 영화는 그저 제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의 영화라서 본 것일뿐 다른 의미는 없거든요."


등등.


그러면 선생님은 내 대답을 듣고, 컴퓨터에 무엇인가를 적으면서, 나에 대한 설명서를 적어가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나라는 인간의 스펙트럼을 좁혀가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거 선생님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짧게는 20분에서, 뒤에 예약이 없다면 길게는 40분까지의 상담을 한 후, 선생님은 다음 내원까지의 약을 처방해주곤 했다.


(참고로 이것은 내가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을 다녀서 그런 것이다. 1분에서 5분 동안 한 주의 상태변화만 듣고 약만 처방해주는 정신과도 많으니 필요한 곳을 선택해서 가길 바란다.)



항우울제 처방은 보통 가장 낮은 용량의 투약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서, 점점 갈수록 용량을 늘리는 식이다.


항우울제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약과 안 맞는 약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맞는 약을 찾는 시간이 걸린다. 기본적으로 호르몬약이라 부작용도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에 받았던 약은 가장 부작용도 적고, 약물의 강도도 낮은, 말하자면 입문용 약이었다.


효과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부작용이었다.


그 약의 부작용 중 하나인 식욕 저하가 온 것이다. 물론 우울증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은 그 효과가 무시무시해서, 내게서 아예 밥을 먹을 생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보통 본인 몸무게의 10분의 1이 줄어들면 투약을 중단하고 다른 약을 찾아봐야 한다고 한다.


그때 내가 몸무게를 재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10분의 1만큼은 빠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6개월 동안 먹던 약을 중단하고, 다른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셨다.


(당시 나는 식욕 저하에 따른 체중 감량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심했기에 내가 다른 약을 처방받길 원했었다.)


두 번째 약은 다행히 아직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6개월 째 용량을 늘려가며 먹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비교적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이 쉬웠던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몇 개월 동안 서 너 번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 약도 언젠가 다른 약으로 바꿀지는, 아직 두고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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