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하니 Apr 27. 2022

자살유가족으로 사는 것.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엄마가 날 두고 떠났다. (5)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밤에 잠이 안 와 학교 익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누군가 방금 새로 쓴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새벽에 더 이상 새 글도 올라오지 않아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있던 나는 곧장 그 글을 클릭해 들어갔다.


남동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누나가 쓴 글이었다. 남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그래서 미칠 것 같다고. 장문의 글은 혼란스러운 언어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꼭 몇 년 전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당장 글쓴이에게 장문의 쪽지를 보냈고 그렇게 우리는 새벽 내내 익명 커뮤니티의 쪽지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엄마가 돌아가신 지 4년이 채 안 됐을 때였다. 쪽지의 상대방은 동생을 잃은 지 이제 한달이 겨우 됐을 뿐이었고.


그 분과 쪽지를 주고 받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자살 유가족들의 사고의 흐름이나 양상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족을 강하게 원망하고, 미칠도록 보고싶다가도 꼴도 보기 싫다가, 제발 한 번만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오길 바라며 답답한 가슴을 치고, 자책감에 시달렸다가 분노에 시달렸다가. 마치 풍랑에 휩쓸리는 것 같았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풍랑에.



그 분은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일어나는가 싶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처럼 똑같이 불행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싫다고. 하지만 솔직한 마음이라고.


나는 속으로 꽤나 놀랐다. 그건 나도 했던 생각이었다. 엄마를 잃은 지 얼마 안 됐던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수업 시간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을 보며 저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불행이 닥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다. 비록 제정신이 아니었다지만 한순간이나마 남의 불행을 진심으로 바라다니.



나에게만 이런 감당 불가능한 비극을 갖다준 하늘을 원망했다. 종교도 없는데 말이다.





본래 천주교였던 나는 엄마의 죽음 이후 무교로 돌아섰다. 천주교에서 자살을 중죄로 여긴다는 점, 그리고 그 밖에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반대로 아빠는 무교였다가 천주교가 된 케이스였다. 나는 가끔씩 이해가 안 갔다. 천주교에선 자살을 중죄로 취급하는데 왜 아빠는 엄마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종교를 믿게 된 거지? 애초부터 아예 무교가 되면 그럴 일도 없지 않나?


자살한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서 천주교를 선택한 것이겠지만 애초에 종교가 없다면 기도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 나와는 반대의 선택이었다.


사실 지금도 납득은 안 가지만 이해는 된다. 어쨌든 아빠는 힘들 때 기댈 곳이 필요했을 테고 그게 종교가 된 것이니까.





우리나라는 자살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접할 일이 적다. 누군가 자살로 죽었다 하면 쉬쉬하는 문화 때문에.


내 친한 친구들만 해도 아직도 우리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신 줄 알고 있다.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나만 봐도 뻔하지 뭐.



나와 같은 사람들이 궁금해 기록을 찾다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자살 유가족편-822회를 찾아 봤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건데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다.



십 년도 더 전에 방영했던 것이라 지금은 조금 달라졌겠지만, 방송에 나오는 자살 유가족 분들은 모두 자살 유가족이 받는 편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자식이 자살을 해 자식 교육을 잘못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무섭다는 아버지, 자살한 사촌언니의 물건을 찝찝하다며 쓰지 말라하는 엄마. 아이러니하게도 유가족 분들은 어떻게 하면 더욱 유가족처럼 보이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덜 유가족처럼 보이는지 두 가지를 모두 고민 중이셨다.


그 프로를 보고나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편견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가족을 얼마나 챙기지 못했으면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자살을 하냐.'

'자살을 한 건 그 사람이 나약해서 그런다.'

'부정타니까 쓰던 물건도 버려야 한다.'


등등.


자살유가족들은 아직도 그 편견과 싸우고 있다.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의 삶이 모두 안녕하길.


나의 삶이 안녕하길.


오늘도 평균 35명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을 등지는 것을 택한다면, 그 주변의 생들이 모두 안녕하길.


언젠가는 스스로를 용서해줄 수 있길. 오늘도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자살 유가족으로 산다는 것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