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대처하고픈, 살림을 하고픈 과학교사의 일상
2020년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이 가을.. 돌아보니, 나는 거절하고 재사용하고 소비를 줄이고 텃밭을 일구고 세상과 다른 시간 속에 다른 시선과 다른 관점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한 또라이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 하면…
팬데믹 이후 나는 기후위기에 우당탕탕 대처하며 실천하며 살아가는 또라이? 중에 한 존재라고 보면 된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이나 속마음을 갖고 있다.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살아? 혹은 저런다고 모가 달라져? 혹은 참, 대단해요...근데 난 이렇겐 못살아요..., 혹은 자기 의에 사는 거 아냐? 혹은 무시.......
그렇게 좋은 반응은 대부분 아닌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불편을 감수하고, 달라질 것 없는 세상을 향해, 누군가의 응원도 잠시, 외롭고도 힘들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왜 이렇게 살까? 답은 하나였다. 알아버린 것에 대한 죄다!
그것은 고통받는 생명에 대한 애통함이고, 고통받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고,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한 책임의식이며, 엄마이자 교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부이다.
세상의 대세를 따르고, 남눈 살피고, 오지랖퍼였으며, 맡겨진 일에 순응하던 나라는 존재는 4년간 무던히 다져졌다.
당신을 바라보는 사진속의 정체가 무엇처럼 보이는가??? 바나나?? ㅎㅎ 아니다!!
난 바나나가 아니야!! 노란 가지란 말이야!!
그런데세상은 자꾸 바나나 라고 한다…끝까지 바나나라며 왜곡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잘 산다는 의미는 well-being인데 언제부턴가 돈이 많다, 남보다 떵떵거리는 상대적인 물질의 양, 자본주의가 뼛속까지 젖어 들어 구별조차 되지 않듯이..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존재였고,, 그런 순응주의자였다.
그런데 세상에 눈을 뜨고 불의한 것에 분노하기 시작했으며 이 세상의 고통과 약자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차즘 나는 남눈치를 안 보고,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것이 무엇인지 구별 좀 하고, 세상의 흐름과 문화, 소비주의, 물질만능, 과학이라는 전제하에 말하는 합리적이다 라고 믿는 근대적 사고를 의심할 줄 아는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되었으며, 맡겨진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상상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렇게 나는 다져지고 또 다져지며 선한 또라이가 되었다. 그리고 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냥 또라이는 아니다. 방향성이 있고 굽히지 않을 의지와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 방향성이 나와 내 가족뿐만 아니라 내 이웃과 내주변의 생명, 내가 만나는 학생들과 다음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고 삶으로 살아내는 또라이고 싶다.
그렇게 나의 발자취에 책임지고 돌아보고 싶다. 그래서 우당탕탕 이 바쁨 속에서 그 발자취를 조금씩 끄적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