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택살이-고양이 편

우리 마당에는 고양이 다섯 마리가 살아요

주택으로 이사 오는 날, 우리의 보금자리에는 우리보다 먼저 마당과 창고에 정착한 원주인? 이 있었다. 바로 그전 주인이 키웠던 찰스와 그의 자녀 네 마리.. 찰스와 첫째 딸 뽀뽀를 제외하고는 이름 없는 고양이들이었다. 나는 고양이들이 반갑진 않았다. 집안에 동물이던 어떤 생명체던 키울 마음도 없었고 호옥시 마당이 생긴다면 반려견 정도만 생각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전은 우리 두 딸들이 고양이들을 보자마자 반기고 너무 좋아라 했다는 거다. 특히 둘째가 말이다. 보자마자 찰스, 뽀뽀를 제외한 세 마리의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얼굴만 내밀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호기심쟁이 고양이를 빼꼼이라 가장 먼저 이름 붙였다. 그리고 덩치가 중간이라며 센터, 까만 고양이인데 발만 하얗다고 하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에겐 그들과 적응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데 아침밥 저녁밥을 챙기느라 바쁜 둘째의 동심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반강요로 고양이 사료를 사기 시작하고 관련 사이트에 가입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동네 길고양이들에게까지 이름을 붙이는 아이들... 어떻게 알았는지 오는 고양이들을 다 구별한다. 지금은 총 13마리의 동네고양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그런데, 사건은 이사온지 50일도 채 되지 않아서 벌어졌다.
우리 집 아랫마당에 함께 사는 이웃-찰스, 뽀뽀, 빼꼼, 센터, 하양이




2025년 5월 26일 월요일 이른 아침 첫째 서연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빠~엄마~ 빼꼼이가 다쳐서 왔어! 이리 와봐 이리와봐.." 무슨 소리인가 하며 마당에 나가보니 빼꼼이 오른쪽 앞발이 무언가에 잘려 발을 전혀 딛지 못하고 피를 흘리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아픈 발을 딛지 못하는 빼꼼이, 어떻게 해야 하지? 순간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는커녕 고통을 느끼는 어떤 생명과 함께 살아가 본 적 없는 내 입장에서는 혼돈이 찾아왔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 마음을 모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불쌍해서 인지, 밥을 주는 고양이라 지금까지 정이 들었으니 책임을 저야 하는 마음인건지, 밖에서 사는 고양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인지... 나조차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나는 그날 온종일 빼꼼이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 계속 마음이 쓰여서 애들 등교하자마자 고양이를 키우는 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캐리지에 고양이를 유인해서 병원에 가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다시 당근에 케이지를 알아보다가 미룰 수 없어서 근처 아는 분에게 고양이를 옮길 수 있는 케이지를 빌려왔다.

그날 나는 혼자 끙끙거리며 빼꼼이를 넣어 보려고 시도했지만 다쳐서 경계하는 고양이를 도저히 케이지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 아파서 웅크리고 잠들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맘이 아팠다. 혼자는 안 되겠어서 2시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일부러, 이은이랑 서연이를 일찍 데리고 와서 케이지에 사료를 두고 시도해 보기도 하고, 한쪽으로 몰아서 이동시켜보려고도 하고, 퇴근한 남편의 힘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그날, 결국 실패했다.

나는 너무 머리가 아팠다. 이렇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무게가 있음을 다시 깨달았던 날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 빼꼼이가 낫게 해 주세요. 빼꼼이가 케이지에 들어가서 병원에 다녀오고 싶어요."라고 말이다.

집 마당에 케이지를 두고 거기에 고양이 사료를 넣어두었더니 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케이지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화요일 오후부터는 빼꼼이도 케이지에 들어가 사료를 먹곤 해서, 기회를 보고 있다가 수요일에 드디어 평화롭게 케이지에 넣을 수 있었다. 동물병원이 문 닫을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오후 5시 반쯤 빼꼼이가 있는 케이지를 들고 모두 생애 처음으로 동물병원에 갔다.

동물병원에서도 쉽지가 않았다. 수의사 선생님이 케이지에서 빼꼼이를 빼다가 놓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수의사 선생님은 ”이러면 우리가 해줄 것이 없어요. 약만 처방할게요. “ 하셨다. ”그럼 다친 발은 못 살리나요? “ 물어봤는데, ”못 살려요. 절단되거나 괴사 될 거예요"라는 답변... 더 이상 우리가 해줄 것이 없구나, 생각했지만 최선을 다한 거라며 아이들을 위로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3일 치의 약을 받아서 집에 왔다.

IMG_4805.HEIC 가까이 다가가면 세발로 도망가던 빼꼼이를 멀리서 찍어둔 사진




이런 일이 있는 동안 분명해 지는 것은 ‘우리가 고양이들의 주인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인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빼꼼이에게 선의를 베푸려 해도 빼꼼이가 스스로 우리를 믿고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함을 알았다.

결국, 우리 집에 사는 5마리의 고양이들은 때때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아랫집 사는(창고가 지하 쪽에 있다.) 이웃이다. 주인노릇하려 하지 말아야 함을(주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싫다)그리고 그저 이웃으로 친구로 정성을 다하는 마음만을 품고 같이 살자...라고 가족들과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이웃은 다쳐서 돌아올 수도 있고,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 가족은 생각해 둬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러던 중 금요일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잘려나갈 것 같은 앞발은 여전히 붙지 않았지만 빼꼼이가 다친 앞발을 조금씩 딛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낫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물병원에서 앞발을 쓸 수 없을 거라고 했고, 감염돼서 죽을까 봐 항생제를 받아 먹이고 있는데, 걷기 시작하다니...

교사로 일하면서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한 해 동안 참 속이 상하는 일도 많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난 이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 관계는 1년이라는 시간, 학생과 교사라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변하고, 커 가는 모습을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재밌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고양이들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받아들이는 만큼),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급에 있는 아이들도, 집에 있는 아이들도 결국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고양이를 바라보듯 그들을 진심으로 돕고, 어떻게 자라서 열매 맺을지 바라봐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면 참 괴롭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KakaoTalk_20250708_100223439.jpg 매일의 아침을 챙겨주는 둘째와 항상 문 앞에서 대기 중인 고양이들



그렇게 또 2주 정도가 흘렀다. 빼꼼이의 그 후가 궁금하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은 그 사건 이후 빼꼼이 앞발은 절단되지도 못쓰게 되지도 않았다. 발을 딛고 걸으며 새살이 돋아났다. 완전히 아물진 않았지만 그 부위에 털도 다시금 나기 시작하고 잘 뛰고 이전 모습의 90%를 되찾은 거 같다. 둘째 이은이의 일기장에도 고양이들의 이야기로 가득찬 걸 보니 그 마음이 그들에게 전달되고 서로에 기대어지는고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는건 분명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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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이의 일기장에는 탐사한 것, 안한 것, 오늘 할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인상깊었던 장면 속에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많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고 기도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살림(살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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