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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pr 18.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 12

어쩌다 보니 부르고스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날씨 계속 좋음

Villafranca Montes de Oca ~ Burgos 37km

비야프란까 몬떼스 데 오까에서 부르고스까지


5시쯤 깬 김에 슬쩍 문밖으로 나가본다. 쌀쌀하고 깜깜하고 별이 총총이다. 저 많은 별들을 본 게 언제쯤이었을까? 초등 저학년 때 친척 결혼식 때문에 전라남도 영암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하늘에 빈 공간 보다 별이 더 많아 약간은 무섭고 놀랐던 하늘까지는 아니지만 최근 10년 내 가장 많은 별들을 보았다.

짐을 챙기고 아침을 간단히 먹고 7시가 못되어 길을 나선다. 문밖 오른쪽으로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800m 정도의 고도에서 1000m 이상 높이로 올리는 길이라 아직 웜업이 안된 몸은 힘들다.

일출을 보려면 가던 길에서 180도 방향을 틀어야 동쪽 하늘을 볼 수 있기에 어느 정도 밝아오는지 보려면 계속 돌아봐야 한다. 언덕을 넘어가는 지점까지 해가 올라오지 않은 여명 상태라 해를 직접 보지는 못한다.

양쪽으로 소나무가 심어진 폭 10m 정도의 흙길이 계속 이어진다.

오르막을 다 오르니 이제 급격한 내리막에 이은 오르막을 한번 숨 가쁘게 오르고 계속 평지 같은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바닥의 돌들로 만든 buen camino는 사라지고 긴 까미노 화살표가 대신하고 있었다. 사람들 참 센스 있네.

딱 한번의 급하강과 급상승이 있는 길
진행 방향으로 길게 만들어진 화살표
반대 방향에서 본 모습
간간히 볼 수 있는 순례자가 직접 만든 화살표들
겨울엔 사람하나 보기 힘든 길에 순례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 송충이 아니고 뱀이다! 하지만 송충이. 그들의 생존전략은 붙어서 커보이게 하는 것.

숲길이 10km 정도 이어진 후에야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 도착한다. 수도원이 유명한 곳인데 관람은 못했다. 바르에서 잠시 쉬며 콜라로 당충전을 한다.

다음 마을은 아헤스인데 아들과 왔을 땐 이곳에 술주정뱅이 영국 순례자가 있다고 해서 피하고 다음  마을인 아따뿌에르까로 넘어가기도 했었다.

아헤스 가는 길이 아름답다.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가 보이는 길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2016년 겨울엔 이렇게 마을이 멀리 보이지도 않아서 마을 풍경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헤스
아헤스의 벽화가 있는 집. 인상적이었다.

아헤스를 지나 아따뿌에르까로 계속 진행한다.

오래된 다리가 있는 풍경

도로옆으로 새롭게 순례자 길을 만들어 놨다. 예전엔 도로 위를 걸었었는데 그간 더 많이 좋아졌다.

선사시대 유적의 상징물인지 뭔지 저렇게 돌들을 세워놨다.
이 곳에는 100만년 전 선사시대 거주지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북쪽 해변 근처에는 그 유명한 알따미라 유적이 있다.
아따뿌에르까 마을 전경

아따뿌에르까 마을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다. 메누 델 디아로 제대로 먹으려고 했는데 1시에 주방을 연단다. 그래서 대강 돼지 귀 핀초스와 로모, 께소 보까디요 그리고 세르베사 그란데로 요기를 했는데 이거 배부르다.

보까디요와 핀초스
시원한 맥주 큰잔

마을을 빠져나오면 긴 언덕을 따라 오른다. alto de atapuerca 알또 데 아따뿌에르까(아따뿌에르가 언덕, 고지쯤 되는 표현)를 천천히 오르는데 땀이 뚝뚝 떨어진다.

정상에 다 오르자 십자가가 돌무더기 위로 뻗어있다.

돌들을 하나씩 주워다 십자가 주변에 쌓았다.

수녀님 같은데 아닐 수도 있고 사진한장 찍어주겠다고 하고 한컷, 메일주소를 받아 메일로 사진을 보내드렸다.

정상에는 작은 돌들로 동심원을 그린 것이 있는데 선사시대의 인간은 무슨 생각으로 동심원을 표현한 것일지 참 궁금하다.

언덕을 넘어서는 지점에 서자 부르고스와 그 앞마을인 비야프리아villafria가 보인다.

원래 계획은 중간 마을에서 머무르려 했으나 부르고스가 이렇게 잘 보이는데 그냥 멈출 수가 없어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직진했다. 24km가 37km가 되는 엉뚱한 계획 변경이었다.

내리막 끝에 이르러 부르고스 비행장을 만났고 이곳부터 10여 km를 지루하고 힘들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경비행장을 지나 비야프리아에서 쉬어갔다. 더 걷기 힘들었다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프고. 동네 바르에 들어가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뿔뽀 핀초와 꼬까꼴라를 시원하게 마셨다. 뿔뽀 핀초는 맛없고 비싸기만 했다.

시간과 정신의 방으로 불려도 과분하지 않을 일직선상의 보도블록 길을 4km 넘게 걸어 드디어 부르고스 초입에 도착했다. 8년 전에도 참 지겨웠었는데, 버스를 탈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맥도널드가 일요일임에도 열려있기에 환타 500ml를 시원하게 마셔주고 다시 길로 들어선다.

순례자와 순례길 조개 표시가 부르고스 초입을 장식하고 있다.

초입에 꽤 큰 성당을 구경하며 계속 걷는다.

부르고스 초입의 Iglesia Santa María la Real y Antigua de Gamonal

한참을 걸어 구도심으로 넘어가는 아를란손 강 건너기 전에 또 멋진 성당을 만난다.

Iglesia de San Lesmes Abad
부르고스의 상징인 엘시드 일지도...확인 못해봄

이사벨 여왕이 신대륙을 찾아 돌아온 콜럼버스를 만난 곳인 까사 델 꼬르손 중세왕궁을 찾아 나섰는데 공사 중이라 제대로 못 봤는데 이곳이 맞을 것이다.

어렵사리 드디어 추억의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613,614의 침대번호를 받았다.

6층이 있는 건물이었던가? 아 6층은 정규인원을 초과했을 때, 성수기에 사용하는 2층침대 빽빽한 수용소였다. 그래도 뭐 둘이서 넓은 공간을 쓸 수 있었으니

수용소 같지만 수용소 같다.ㅠㅠ

정리하고 저녁 먹으러 나와 추억의 홍콩반점에서 배 터지게 먹고 성 마리아 대성당 야경을 보고 37km 걸은 무릎과 몸뚱이를 침대에 누인다.

오늘 처음으로 30km를 넘게 걸은 첫날이었다. 2년 전 혼자 은의 길 걸을 땐 50km 정도도 몇 번 걸었는데.   이 정도야 하고 생각하지만 몸뚱이는 2년 더 늙어버렸다. 힘들어라...


오늘의 지출 - 21유로

오르떼가 커피 : 3유로

아따뿌에르까 간식 : 14유로 (선배)

홍콩 석식 : 34유로(선배)

알베르게 : 10유로

음료등 : 8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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