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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Jul 02.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25

오 세브레이로를 지나 갈리시아에 들다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비가 내리다, 진눈깨비가 날리다, 눈으로 변한 전형적인 Galicia 날씨.

Villafranca del Vierzo ~ Hospital까지 33.5km   

갈리시아는 갈리시아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간간이 내리는 비가 좀 불편하고 춥기도 했다. 1250m 높이의 고지대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렸다. 4월 27일에 내리는 눈은 뭔가 생경하다.


어제는 비가 제법 내리더니 새벽까지도 내린 듯했다. 걸어야 하는 시간이 되니 비는 멈췄다. 계속 이래야 할 텐데. 아침을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챙긴다.

Iglesia de San Nicolás El Real

마을 중심을 통과하며 약간은 부러웠던 사립 알베르게의 아침풍경을 슬쩍 들여다본다. 왠지 모르게 좋아 보이는 사립 알베르게들. 중심을 통과하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성당은 Iglesia de San Nicolás El Real 이글레시아 데 산 니꼴라스 델 레알이라는 이름의 제법 큰 성당이고 이 성당 오른쪽 뒤로 돌아 들어가면 이곳에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을 찍었던 장소가 있다. 그리고 알라메다 공원이 이어지며 길의 왼쪽 모퉁이 끝에는 Colegiata de Santa María de Cluni 꼴레히아따 데 산따 마리아 데 끌루니를 만나게 된다. 이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나가면 강변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다리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데, 이 다리 위에서 보는 마을 풍경이 참 좋다.  

Colegiata de Santa María de Cluni
Colegiata de Santa María de Cluni
길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 비야프란까의 중세다리라는 이름을 가졌다. 
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 건너기 전 순례자 조형물

다리를 건너면 길은 화살표가 두 방향으로 있다. 하나는 오른쪽 오르막 쪽의 마을 골목으로 이어지며, 왼쪽으로는 평지 도로옆을 따라가는 길이다. 난 등산하기 싫어 왼쪽의 원래 길을 따라 걷는다. 

다리 건너로 이어지는 마을 풍경
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 위에서 바라본 하류 방향 풍경
다리 위에서 바라본 Colegiata de Santa María de Cluni
Puente Medieval de Villafranca에서 바라본 상류 발향 풍경

다리를 건너고 한동안 걷다 급커브길에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니 멀리 산띠아고 성당 아래쪽의 Castillo-Palacio de los Marqueses de Villafranca 마르께세스 왕궁과 성이 시야 끝에 걸렸다. 아 저렇게 멋졌구나... 2016년에도 봤고 이번에도 봤는데 가까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우뚝 솟은 웅장함, 균형미?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몇 컷 담는데 나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한국인 부부순례자도 뒤를 돌아보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작가가 찍는 자리에서 찍어야지!" 이러신다. 내가 작가처럼 보였나 보다. 

좀 지루하다 싶은 도로 옆길을 자전거 순례자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나를 앞질러 가는 외국인 순례자도 여럿이 있어 그나마 심심함을 덜 수 있었다.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걷다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에 뻬레헤라는 첫 번째 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마을이 크진 않지만 길게 이어졌다.  

마을은 깨끗하지만 너무 조용했다. 집밖으로 나와 뭔가를 하는 주민을 볼 수 없었다. 아직은 너무 이른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가? 현실감 없는 마을은 이 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스페인 국기를 장식처럼 걸어놨다.
국화처럼 생긱 꽃이 너무 담백하고 아름답게 피어있어 눈길을 끞었다.

뻬레헤를 빠져나오면 다시 도로와 만나고 도로를 따라 얼마간 걸으니 도로 오른쪽 옆으로 다음 마을로 진입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배낭을 멘 외국인 순례자

이번 마을의 이름은 Trabadelo 뜨라바델로인데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나무를 켜서 건조를 위해 쌓아 올린 나무 더미를 여러 개 볼 수 있었고 이 나무를 가공한 제재소도 있다. 마을이 막 크거나 하지 않지만 앞의 뻬레헤 보다 규모가 있어 무니시빨 알베르게와 빨로끼알 알베르게, 그리고 사설 알베르게도 있어 비야프란까 델 비에르소에 머무르지 않고 통과했다면 하루 묵어 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무를 켜서 차곡차곡 쌓아 비를 맞히고 볕을 쬐여 나무를 건조하고 있다.

집들이 본격적으로 자리하기 시작하는 곳에 바르가 오픈해 있었고, 이곳에서 오늘의 첫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 간다.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순례자들이 이 바르(끄리스뻬따 바르)에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Crispeta Bar

약국도 있는 걸 보니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마을이 끝나가는 지점의 왼쪽에 예쁘장한 이층집 꼭대기 옥탑방 창에서 아기가 날 바라보고 있어 깜짝 놀랐는데 아기가 아니라 인형이다. 젠장... 어쨌든 2016년의 겨울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어서 좋았다.

옥탑방 창문에서 지나는 순례자를 놀래키는 아기 인형... 뭐냐 진짜! 깜딱 놀랐다. 

마을 끝으로 난 길은 다시 큰 도로와 만나고 도로 옆길을 따라 다시 한동안 걸어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데 꽤 큰 주유소와 호텔이 있는 곳을 지나면 작은 마을인 라 뽀르뗄라로 이어지고 마을 입구에 순례자 상이 순례자를 반기며 서 있다.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라 뽀르뗄라를 통과하면 길은 금방 다음 마을인 암바스메스따스로 이어진다. 암바스메스따스의 바르에서 잠시 부슬비를 피해  테라스에 앉아 이랭치랭 용도로 생맥주를 한잔 마셨다. 

암바스메스따스 초입의 어부라는 이름의 알베르게가 있는데 연못에서 낚시도 하는 듯.
IGLESIA DE SAN PEDRO는 앞 마을의 성당과 거의 똑같은 모양의 성당인데, 다만 앞부분 옆벽에 창이 없다. 

아직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지 않고 마을이 이어진다. 다음 마을은 '베가 데 발까르쎄'. 본격적인 오르막에 진입하기 전 마을인 듯하다. 큰집들이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로 규모 있는 건물들이 꽤 많다. 

산밑쪽으로는 집들이 모여있고 그 집앞쪽으로는 발까르쎄 강이 흐르고 그 앞 초지에는 소들이 살아가고 있는 농촌 마을 같지 않은 농촌 마을이라고 해야 하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잘 어우러져 아름답기까지 하다.

오 세브레이로 정상까지 식사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새로 연 듯한 제법 잘 지어진 바르로 들어가 따뜻한 온기 속에서 혼합 샐러드와 닭다리 구이로 구성된 메누 델 디아로 여유롭게 점심을 즐겼는데, 닭이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인심이 야박해서 인 건지 닭다리의 허벅지 위까지 커팅되지 않아 약간 부실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먹다 보니 배가 부르다. 이놈의 감자튀김은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샐러드와 닭다리 구이 con patatas. 감자튀김을 곁들인 닭다리 구이. 스페인 사람은 감자튀김으로 모자란 탄수화물을 채우는 듯 했다.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버려진 농가 주택

2016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새로 생긴 집들이 늘었다는 점. 변하지 않은 건 시골 마을에서 사람보기 쉽지 않다는 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뭐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힘들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그저 약간 더 가파르고 좀 더 길게 걸을 뿐. 순례길은 매일 걸어도 매일 힘들다. 걷는 것 자체야 익숙해지지만 힘듦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절반은 넘게 올라온 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

산밑 마지막 마을인 라스 에레리아스 Las Herrerías에서 오 세브레이로 정상까지는 약 8km의 거리에 600m 이상 고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어떤 순례자들은 이곳이 피레네를 오를 때 보다 힘들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힘들진 않다. 청계산 보다 조금 높은 정도의 높이에 거리는 2배 이상 길다고 할 수 있으니 경사는 그야말로 완만하다. 

고도를 점점 높여 해발 고도를 960m쯤까지 올리면 라 파바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는 전형적인 시골 주택의 형태를 가진, 하지만 오래되지는 않은 가정집을 볼 수 있는데, 1층은 커다란 외양간 역할을 하고 2층엔 사람이 거주하는 형태를 가졌다. 

1층엔 소, 개, 말 등이 머무르고 있고, 그 위엔 집주인 가족이 살고 있는 형태의 시골 농가 주택

라 파바를 지나 다시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까스띠야와 레온 주'에서 '갈리시아'의 경계지점인 Punto de entrada a Galicia 갈리시아 입구지점을 알리는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이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일주일 정도만 걸으면 도착을 하게 된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바람과 비의 지방 갈리시아가 시작된다. Punto de entrada a Galicia
너무나도 익숙하고 깔끔한 갈리시아 지역의 방향, 거리 표지석

산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정상의 연무를 따라 조금 더 힘을 내 오르면 오 세브레이로의 정상부 1350m 높이에 도착하게 된다. 

정상부 평지 오른쪽으로 석축이 쌓여 있는데, 2016년에는 이런 석축이 있었나 싶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Escultura "Peregrina repousando"  "순례자의 휴식"조각상

오 세브레이로 정상에는 'Santuario de Santa María a Real do Cebreiro'라는 성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성체와 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곳이라 하여 많은 순례자가 찾아온 곳이라고 한다. 9세기에 원형이 지어졌으며 1962년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고 한다. 

Santuario(성스러운 장소, 성소) de Santa María a Real do Cebreiro
조명에 의해 3개의 십자가를 만들었다. 3위 일체를 의미하려고 그런 것일까?

오 세브레이로의 마을은 근세의 석조주택들과 이 지역 고대의 주택 형태인 원형으로 돌을 쌓고 나무 등으로 지붕을 올린 빠요사스(pallozas)라는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오 세브레이로의 무니시팔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왠지 어수선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 나와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한다. 

이미 30km를 넘긴 시점이긴 했지만 내리막이라고 생각해 길을 나섰는데, 웬걸 짧고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젠장할... 욕이 나온다.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다음 마을인 니냐레스 LIÑARES에 도착했는데, 머무르고 찜해 놓은 알베르게엔 순례자가 가득했다. 참나... 내가 찾은 좋은 곳은 이미 다른 사람도 다 알고 있었다. 거실창으로 산 아래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멋진 곳이었는데 안타깝지만 다음 마을인 Hospital 오스삐딸로 이동한다. 이곳엔 갈리시아의 공식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오스삐딸에 도착하기 전 전망대에는 바람을 뚫고 걷는 순례자상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도착한 오스삐딸의 알베르게엔 오스삐탈레로가 자리를 비웠다. 수납 사무실로 쓰는 방 앞에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좀 기다리라고 하는 듯하다. 피차 영어도 익숙하진 않아 스페인어, 영어를 대강 섞어 말한다. 그래봐야 몇 개 단어의 나열일 뿐. 그래도 내가 순례자임을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니 알베르게의 관리자는 귀찮아도 오긴 와야 한다. 

오스삐딸레로가 올 때까지 햇볕을 받으며 동네 냥아치 녀석의 재롱도 보고, 담배도 말아 피우고... 아. 좀 추운데... 30분쯤 기다리니 아줌마 한분이 온다. 접수하고 둘 뿐인 알베르게 2층의 숙소로 올라간다. 

알베르게 2층 방에서 내다보이는 오 세브레이로 방향의 풍경
앞쪽 보이는 도로가 오 세브레이로로 이어지는 도로

가방을 탈탈 털어 먹을 것을 모아 간단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갈리시아의 공립 알베르게에는 열기구는 있지만 주방 기구가 하나도 없는 경우가 거의 다인데, 전에도 적었었지만 지역 경제를 위해서라고 한다. 해 먹지 말고 사 먹으라는 말이다. 아니... 다 좋은데. 식당이 있어야 사 먹지...

오늘은 거의 36km를 걸었는데 거의 오르막만 올랐으니 제법 힘들게 걸은 날이다. 동행인 선배님도 많이 피곤한 눈치다. 그래도 잘 걷고 있어 다행이다. 특별히 많이 아픈 곳도 없고. 저녁을 먹고 나니 저녁 8시쯤 되었는데 외국인 남자 순례자 하나가 더 도착했다. 12인실에서 2명이 편안하게 잘 생각에 나름 괜찮았는데. ㅋ

창밖으로 내리던 비는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많이 내리면 곤란한데...

라디에이터의 온기를 느끼며 잘 수 있어 다행인 25일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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