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북쪽길 -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
갈리시아의 6~8일 차 전체 여정으로는 32일~34일 차 구간은 프랑스 길로 접어들어 걷는 구간이다. Arzua 아르수아라고 하는 마을에서 프랑스길과 만나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에 닿는다.
갈리시아 6일 차인 오늘 드디어 프랑스 길과 만난다. 프랑스 길은 2016년 2월 초에 아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고 대부분의 순례자가 이 길을 걷기 때문에 순례자가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 "Buen Camino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거의 안 하게 되는 구간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던 프랑스 길을 걷던 순례자, 오비에도를 통과해 산악 지역을 통과해 쁘리미띠보 길을 걷던 순례자가 합쳐지면서 순례자가 많아지고, 기본적으로 순례자의 숫자가 10배 정도 늘어나기 때문에 모든 순례자에게 인사하며 걷는 게 뭐랄까 약간 불편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좀 그렇다. ^^
블루투스 접이식 휴대용 자판은 작동이 되지 않아 그의 육신을 알베르게 휴지통에 넣어 장례 치러주고 길을 나섰다. 떠나기 아쉬는 알베르게 "Sobrado dos Monxes"였다. 또 올일이 있을까 싶지만 꼭 다시 와보고 싶은 알베르게였다.
안개와 함께 시작해 시야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기가 곧 시작될 갈리시아에서 비를 맞지 않는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걷는다. 나무 터널 모양의 길을 점점 많이 볼 수 있는데, 숲이 우거진 갈리시아의 생태가 잘 반영된듯하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아주 귀찮은 상태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비의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우의는 생략하고 사진기에는 커다란 슈퍼마켓 비닐 봉지를 씌워 조금이라도 좋은 품질의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 너무 무겁고 귀찮고...
Igrexa de Santa María de Sendelle 마침 마을의 누군가 돌아가셨나 보다. 장례식이 끝났는지 동네 사람들이 공동묘지가 있는 성당에 모여있었다.
드디어 북쪽길은 끝났다. 아르수아에 도착하며 프랑스 길과 만났고, 이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39km 남았다는 표시석을 만났다. 걷기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라면, 오늘 안으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Arzua 중심부의 바르를 찾아 잠시 쉬어간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는 펩시콜라. 스페인에서는 펩시콜라를 내어주는 바르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르수아를 빠져나오면 다시 조용하고 푸른 길이 이어진다. 생각만큼 순례자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르수아가 보통 하루 묵어가는 마을이라 그런 듯하다.
그론세 앱에서 'A Calle 아 까예' 마을에 알베르게를 안내하고 있어 작고 조용한 동네인 이곳까지 힘들게 발길을 옮겼는데 식당을 겸하고 있는 알베르게에 예약 없이 입실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으니 가능하다고 해서 도착 후 늘 하는 것들을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요청했다. 퍼스트는 갈리시안 수프, 세컨드는 비프스테이크, 음료는 와인, 후식은 아이스크림으로 뚝딱.
이 집의 하우스 와인은 진하게 입에 착 감기는데 향도 맛도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난 와인맛을 모른다.ㅋ
갈리시안 수프는 우리나라의 시래깃국 비슷하다. 신기하게 된장푼 느낌이 나는데, 아마도 콩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구수한 맛이 나는 것 같다. 어쨌든 맛있어서 바게트 뜯어 싹싹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먹었다.
오늘 많이 걸었기에 내일 어디까지 갈지 부담스럽지 않다. 이제 30킬로 정도 남았고, 알베르게는 군데군데 많은 프랑스길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차하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들어가면 되니까!
밥 먹고 방에 올라왔는데, 스페인 중년 아저씨가 엉망이 된 발바닥의 물집을 처치하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좀 웃겼다. 엄청 큰 소리로 "아 악! 으~~~~~~~~~악!" 느낌의 스페인어로 고통을 표현하는 소리 재밌었다. 그 양반은 몹시 아픈 듯했지만...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만큼 남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 일단 몬떼 도 고소까지 가기로 했다. 도착한 후 좀 더 걸을지를 고민해 봐야겠다.
그런데 비다...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이곳은 갈리시아고 또 우기가 시작되는 즈음이니까 오랜 고민이 필요 없다. 우의를 입고 출발. 어제 저녁도 잘 먹고 아침에 시리얼바와 귤 두개를 먹었는데 이상하게 또 몸에 기운이 없다. 어제 그제 걷기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맥이 풀린 느낌이다. 부슬비를 맞으며 천천히 걷는다.
살세다에 문을 연 바르가 있어 또르띠아 데 빠따따스와 라떼, 목이 메어 콜라 한 캔 6.5유로. 또르띠아 데 빠따따스가 커서 충분한 한 끼 식사로 충분해 보인다. 금방 구워서 촉촉 따뜻 맛나다.
비가 내리므로 큰 카메라는 비닐로 포장하고 핸드폰으로만 찍는데, 하... 정말 질리지 않는 멋진 길이다.
오 페드로우소가 낯이 익다. 예전에는 이곳에 비를 흠뻑 맞고 커~다란 공립알베르게에서 짐을 풀고, 피자가게에서 아들과 저녁을 먹었었는데, 오늘은 그냥 지나치는 마을이다.
오 페드로우소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공항 근처이기도 하고 길이 비행장을 반바퀴 돌아가는 모양이라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볼 수 있고 또 비행기 소리가 엄청 시끄럽기도 하다.
순례길에는 길을 걷다 사망한 순례자를 기리는 기념 조형물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2016년 걸었을 때는 몇 개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꽤 많아졌다. 이 길을 걷다 사망하면 그들이 가진 종교에 따라서는 가장 이상적인 죽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은의 길을 걷던 한국인 순례자분이 동행하던 스페인 순례자의 죽음을 알리기도 했었더랬다. 알베르게에서 주무시다 하늘로 가버린 경우다.
언덕도 엄청 많은 길. 70세의 미국 할머니가 열심히 걷던 길. 그 할머니께서 내가 부르던 노래에 엄지 척 해주던 길 ^^. 방송국, 목재소 등등을 지나 드디어 '몬떼 도 고소'에 도착 마지막 언덕을 오르는데 날이 개고 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텔라가 보이는 위치에 도착했다. 길의 왼쪽의 넓은 부지에는 레저 숙박단지가 구성되어 있고 그 맨 위쪽 건물을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었다. 밑에까지 내려가지 말고 맨 위의 첫 번째 건물이 알베르게니 이곳으로 바로 갈 것.
오늘은 이곳 몬떼 도 고소의 공립알베르게에서 하루 쉬고 가기로 했다. 간판 보고 알베르게 찾다가 헤매고 있는 다른 순례자와 함께 맨 윗 건물로 가보니 그곳이 알베르게다. 표지판 좀 잘 만들어 놓으면 어디 덧나나? 구글 지도에서의 알베르게 건물 위치는 완전히 반대쪽으로 잘못표시되어 있었다.
산띠아고 대성당 종탑 앞으로 빛이 내리고 있으니 왠지 신성해 보이는 느낌적 느낌. 몬떼 도 고소에 머물러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꼭 머물러 가길 권한다. 저녁을 못 먹어서 주변 식당을 찾아보니 멀어서 레저단지에도 식당이 있어 내려가 봤는데 문연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털어 먹었다. 알베르게 침대에 누워있다가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일몰... 잽싸게 언덕 위로 올라가 산띠아고 대성당 앞으로 떨어지는 빛을 같이 담을 수 있었다.
*참고 : 산티아고 대성당의 희년
산티아고 대성당 희년은 성 야고보 축일(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이 해에는 전 세계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방문합니다. 희년에는 순례자들이 대성당을 방문하여 고해성사 및 영성체 등을 통해 전대사(모든 죄를 면제해 주는 것)를 받을 수 있습니다. 2021년이 공식 희년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순례자가 방문하기 어려웠을 것을 고려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히 2021년 희년을 2022년까지 연장하도록 승인했다고 합니다.
북쪽길 순례는 오늘 끝난다. 이제 산띠아고 대 성당까지는 불과 4.5km 정도만 남았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4.4km 떨어진 O MONTE DO GOZO(오 몬떼 도 고소)에서 8시쯤 출발. 이른 시각임에도 산티아고를 향하는 발걸음은 나 말고도 여럿이다. 오전 8시임에도 이렇게 깜깜한 이유는 EU 회원국인 스페인도 역시 다른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주 일요일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대성당 가는 길에 익숙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반갑네...^^. 마침, 미사가 끝나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성당이 있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대성당 바로 뒤의 성당이자 수도원이면서 미술관이면서 오스뗄(Hostel)도 있는 건물. 이게 한 건물이되 한 건물은 아닌 것이다. 다 이름이 별도로 있다. 이곳 오스뗄은 순례자들에게 꽤 유명하다. 기회가 된다면 하루 묵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34일 만에 800km를 두 발로 온전히 걸어 도착했다. 걸어서 도착은 2번째, 도시 자체는 3번째가 되었다. 이른 시각에 도착했기에 광장에 잠시 앉아 성당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맑은 날씨와 공사가 완료된 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의 완전체가 반갑다. 2016년엔 오른쪽 종탑을 비계로 가려놓고 공사 중이었어서 아들은 크게 실망했었는데, 오늘은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마침 눈에 익은 이태리 할배들과 스페인 처자 그룹이 보였다. 아는척하니 반갑게 인사해 준다. 선물할 건 없어 내가 가진 카메라의 최대 파일 사이즈로 단체사진을 찍어 메일로 전달했다.
잠시 앉아 사진을 찍고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인증서 받고 건물 아래로 내려가 코인로커에 배낭을 넣고 미사보고 점심 먹고 주변 관광을 했다.
운 좋게 botafumeiro 보따푸메이로(대향로) 미사를 볼 수 있어 왠지 감동이 더했다고나 할까? 미사 중간에 거대한 향로가 성당 중앙에 굵은 동아줄에 매달려 연기를 날리며 성당 복도의 허공을 날아대는 모습이 감격스럽다. 게다가 얼떨결에 영성체까지 모셨으니 난 모든 죄의 사함(전대사)을 받게 된 것이다. 하하하.
까미노 친구 연합 블로그 등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소개했던 '누마루'라는 한국식당에 갔다. 예약을 해야 한다지만 혼자라서 바테이블에 혼자 앉아 비빔밥을 먼저 시켜 먹었다. 매우 맛있는 오랜만의 한식이 너무 좋았고 약간 부족한 듯하여 치킨 조각을 시켰는데, 주문을 잘못한 건지 잘못 알아들은 것인지 매운 닭강정 식사가 나왔다. 뭐 일단 다 먹긴 했다. 다만 닭튀김 양념이 좀 짰다고나 할까? 후식은 아이스크림 한 개 먹고 음료도 하나 먹었는데 음식값은 28유로 메뉴 델 디아 두 개값을 다 받았다. ㅋ 재밌는 건 이곳의 손님은 거의 다 현지인들이고 한국인은 순례자들 뿐이었다. 누마루는 이 지역에 2개 운영 중이다.
미리 예약한 Albergue Seminario Menor를 찾아갔는데 아... 좀 멀고 언덕 위에 있었다. 공용샤워실을 쓰는 1인실을 예약했는데 제법 넓고 경치 좋고 햇볕이 잘 들어 24유로가 아깝지 않았다. 미리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샀어야 했는데, 숙소에 들어갔다 다시 마트로 나와 먹을 것들을 사서 간단히 저녁과 내일 아침 준비를 했다. 이 알베르게는 이전에 수도원이나 학원이었던 것 같다. 건물을 규모가 상당히 컸다. 다만 3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한다고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24유로에 독방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해택이니 꼭 이용해 보길 권한다.
88일간의 순례여행은 이제 북쪽길을 마쳤고, 은의 길 1,060km의 시작점인 세비야에서 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2권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글도 사진도 별로인 연재였지만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권 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것으로 마치고 1권의 마지막 연재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는 도시만을 주제로 사진 부록처럼 작성할 예정입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