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을 기다리며
며칠간의 대치 끝에 나는 결국 기권했다.
딸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오기까지 수없는 절규의 몸부림을 나는 오롯이 지켜봐야 했다.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주면, 인내로 견뎌내면 괜찮아질줄 알았다. 그래도 한번씩은 나를 향해 미소를 띄기도 했고, 뭐라도 함께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언제나 휴대폰 앞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아이는 번번이 약속을 어겼고 그날은 계속 돈을 요구했다. 불과 일주일 전, 용돈을 올려주지 않아서 불만이 많다기에 용돈을 올려줬고 해외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기에 큰 맘먹고 예매도 해준 터라 더는 끌려갈 수 없었다.
나는 그 어느때보다 단호했다.
"나 힘들어서 뭐라도 해보려는건데 안돼?그럼 지금 나 죽으란 거야?" 나를 향한 칼날같은 말들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다 해줄 순 없으니 이번엔 참는 법도 배워보자"
그럴때면 아이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한번 움찔하는 나를 보더니 더 과감해졌다. 끝도 없는 화를 내 앞에서 더 세차게 몰아붙였고 그때마다 나는 삶과 죽음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매순간이 금방 꺼질 것 같은 촛불을 지키듯이 조심스럽고 초조했다.
"누구 한명 죽어야 되는거야?아 제발 보내줘"
119가 왔다.
아이는 이미 여러 차례 자해를 시도했고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너와 나와 우리 가족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응급실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내 아이지만 너무 낯설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아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대체 여길 왜 오겠단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행히 병실이 있어서 주말이 지나면 입원할 수 있단 말에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병실대기 중이라 응급실에서 간단한 식사가 가능하단 말에 샌드위치를 비롯한 각종 간식류를 사달라는 딸 아이를 보며 나는 배신감과 동시에 연민을 느꼈다. '어쩌다 내 아이가 이 지경이 된건지'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나는 아이가 주문한 간식류를 사러 편의점을 들렀다. 그때 유통기한이 임박한 육계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얼른 그것을 집어들고 물을 부어 마구 휘저었다. 손놀림에 빨라진 것을 보니 이 와중에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응급실 옆 보호자 대기실에서 허겁지겁 컵육계장을 흡입했다. 먹다가 주책맞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치는 눈물이 아닌가싶다.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란 의심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먹다보니 채 한듯 가슴이 막혀온다. 급하게 먹은 탓인지, 기분 탓인지 먹었던 음식을 모두 게워내고야 속이 편해졌다.
아이가 주문한 간식류를 들고 다시 응급실 문을 연다. 저만치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 아이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도 미소가 번진다. 꽉 막힌 이곳에서의 생활을 자유라 여기는 너, 바깥 세상을 철창에 갇힌 듯 답답해 하는 너, 엄마를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증오하는 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너를 나는 너무 사랑하기에 네 미소에 그만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진다. 네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길. 네 감정의 파도가 조금이라도 잔잔해지길. 나는 오늘도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