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희 Apr 06. 2022

우주고양이SF좀비무협

실험 1.

 장르 문학,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우주고양이SF좀비무협입니다.

‘우주고양이SF좀비무협은 무슨 민트마카로니짬뽕죽이냐!’ 돌을 던지는 분들이 계시겠죠. 다 보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거 전부 때려 넣었습니다. 아, 고양이는 최신 유행 장르니까 넣었습니다. 일단 고양이를 넣으면 반절은 먹고 들어가더라고요.


 배경은 평범한 중원의 무림입니다. 도사가 판치고 검수가 칼을 뽑아 들고 사람들은 오리고기와 죽순밖에 먹지 않는 세상입니다. 정파와 사파가 대립하고 공공의 적 마교가 중원을 위협하는 이야기. 간단하죠? 이상하게도 황권은 거의 절제된 수준입니다. 천자는 어디로 튀셨을까요? 그런데 저는 머리 아픈 이야기는 쓰기 싫으니 황권은 와해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우주고양이SF좀비무협입니다.


 주인공은 무당파 출신입니다. 삼대 제자 허자 배, 허당입니다. 대충 어리다는 뜻입니다. 약관을 넘지 않은 나이이니 스무 살보단 어리겠군요. 

 도호만큼 허당입니다. 오늘 무당은 화산파와 비무를 했는데, 허당은 화산파의 삼대제자에게 깨지고 나왔습니다. 아니, 박살이 났다고 해야 할까요. 그 말코-도사를 비꼬는 말-가 교묘하게 허당의 허점만 파고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씨 착한 허당은 맞을 수 있는 곳이면 다 내어줬습니다. 아차, 이런 걸 실력이라 하던가요. 아무튼요.


 허당은 지금 무당파 전각 앞마당에 뻗어 있습니다. 수련하다 지쳤나 보네요. 보시다시피 허당은 성실합니다. 오로지 성실함만은 그의 재산이라 하겠습니다. 아, 또 의협심도 있군요. 불의를 목격하면 참지 않는 마음. 역시 그가 타고난 재능 중 하나입니다. 물론 고운 심성이란 세상을 돌리는 귀중한 자원이지만, 아쉽게도 허당은 자신의 성품을 실현시킬 힘이 없습니다. 오늘도 화산파에게 개깨지고 뻗었는걸요. 정승 짓도 정승이라 하지, 개는 못하는 법입니다.

 여기서 허당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쉽니다.

 

“하...”

 

 작고 힘없는 탄식이었습니다. 들을 사람 없지만요. 여기서 한 번 흙바닥에 몸 좀 뒤척여 줘야죠. 특별히 유려한 문학적 언어는 필요 없습니다. 고뇌란 작은 몸짓으로 간결히 표현하는 게 좋은 겁니다.

 

“나는 아무래도 검수가 될 운명이 아닌 듯하구나.”

 

 허당은 지금 18살입니다. 아직 어린 소년입니다. 그렇지만 벌써 좌절을 느끼고 있습니다. 허당이 참을성 없다고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그도 오래 단련하고 수련했습니다. 입문을 12살에 했거든요. 6년의 세월 뼈 깎는 노력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같은 배분 중에서도 하위권, 비무대회 실적도 하위권, 자신 스스로가 여기기에도 성취는 하위권. 어째 하위권을 벗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장문인-무당파의 대장-은 허당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장로, 사숙, 사형들... 모두가 허당을 내버리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허당을 죽어라 끌어 올려주진 못했습니다. 그건 허당 자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도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이제 허당은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피곤합니다. 자고 싶습니다. 오늘 무리했더니 내일 일어날 자신이 없습니다. 곧 동이 트고 연무장에 모여 다 같이 검을 휘둘러야 할 텐데... 오늘은 좀 지쳤습니다. 그런 허당이 충동적인 말을 한마디 합니다.

 

“연무장이 무너져 내일 수련을 쉴 수만 있다면......”

 

 클리셰 하나 생각나지 않나요? 소원을 빌면 별똥별이 이루어 준다는... 직접 소원을 빈 사람에게 직행하여... 프X큐어의 주인공도 그런 식으로 마법전사 파워를 얻었으니 인기 전개입니다. 허당의 소원을 들은-사실 듣지 않았을- 유성은 그대로 허당이 널브러진 무당파의 연무장으로 직행합니다. 허당은 어쩐지 별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분을 느껴요. 거기에서 몇 초만 더 느꼈다면 가루가 됐을 겁니다.

 허당은 옆으로 구르면서까지 별똥별을 피했습니다. 이렇게 빠른 주인공 교체는 곤란하니 잘됐죠.


 굉음과 함께 연무장이 박살나고 연기가 뭉게뭉게 납니다. 아마 장로와 사형제들이 몰려와야 할 타이밍이지만, 우주고양이와 허당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리기 위해 잠시 배경에서 사람은 치워두겠습니다. 허당은 연무장에 떨어진 ‘별’을 살피기 위해 다가갑니다. 매서운 열기와 파편을 밟고 걷습니다. 연기 너머로 둥그렇고 거대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할 즈음, 쫀 허당은 외칩니다. 웬 놈이냐! 감히 무당파를 공격하다니, 이게 무슨 망발이냐!

 

“웨옹.”

“야옹?”

“옭.”

 

 허당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두 발로 걷는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매우 여유롭고 우아한 몸놀림으로 기지개까지 하며 걸어 나왔습니다. 자신이 무당파의 앞마당을 뒤집어 놓은 건 아는지 모르는지요.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철로 된 무언가가 보입니다. 고양이는 거기에 타고 있었던 걸까요? 동그랗고, 가끔 작은 빛이 나며, 복잡한 장식들이 마구 달려 있고, 어딘가 기묘함이 느껴집니다. 중원에 이런 물건은 없습니다. 무림에도요. 허당은 침을 꼴딱 삼킵니다.

 허당은 그것을 철의 별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 많이 읽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