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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Apr 21.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억이의 외출

       이야기 일곱

              억이의 외출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안녕하세요 안동시 보건소입니다.

고재동 님 코로나19 RT-PCR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기침 예절 준수 등 생활수칙을 철저히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보건소에서 받은 문자이다.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마음이 조마조마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도 선뜻 일을 나서지 못하고 소파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야구 채널과 뉴스 채널을 번갈아 가며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고는 싱글벙글 희색이 만면해 설거지하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내색을 덜 하려 했지만 내 눈에 비친 그녀의 표정을 밝디 밝다. 이웃에 마실 오라는 전갈이 틀림없다. 보나 마나 반가운 고스톱 게임 초청장일 거다. 오전엔 탁구 게임, 오후와 밤엔 고스톱 게임. 그녀의 삶의 이유이다. 저렇게 환한 얼굴에 새털구름이라도 쓸 필요가 없어서 모른 체 텔레비전의 화면만 뚫어지라 파고 있었다.

  일주일 전 상주 탁구 대회 나가기 전날에는 고스톱 마실을 말렸건만 듣지 않은 그녀였다. 결국 자정 넘어 집에 돌아와서 새벽같이 일어나 대회에 갔다가 컨디션 난조로 죽을 쑤기도 했었다. 탁구 사랑, 고스톱 사랑 어느 쪽의 저울추가 무거울까 짐작이 어렵다.

  "여봉, 마실 갔다 올게요."

  "......"

  설거지 끝낸 아내가 어설프게 애교 떨며 눈 맞추려 했지만 나는 이불을 당겨 눈을 가렸다. 표정을 들키기 싫었다.

  채널을 바꿔가며 뉴스를 경청하는 아내에게 오늘은 뉴스가 시시콜콜, 보기 좋게 내팽개쳐졌다. 트롯 프로도 방영되는 날인데 그것마저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밤 10시가 훨씬 지난 시각, 부스스 소파에서 털고 일어났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마냥 소파만 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휴무 일도 아닌데 택시 시동도 안 건다는 건 내 사전에서 찾기 힘든 단어이니까.

  억 이와 이웃집 복실이가 나의 기침에 연애를 하다가 들켜 민망해한다. 복실이가 일주일째 우리 집에 와서 억 이와 동고동락하고 있다. 저의 집은 온전히 비워 두고 억 이에게 홀딱 반해 있다. 올봄에 한차례 연애를 하다가 신방을 차렸음에도 2세 생산에는 실패했다. 우리 억 이가 너무 늦은 나이에 초산을 시도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억이 나이 만 6세. 강아지 나이로 중년이다. 2세를 가지기엔 늦은 듯싶지만 사랑의 열정만은 남아 있나 보다. 빨리 자리를 비켜 주는 게 예의인 듯싶어 얼른 택시 시동을 걸고 집을 벗어났다.

  손님은 마치 내 택시를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손님 한 분 모시기 위해 시내를 몇 바퀴 돌아야 할 때도 있었는데. 자정이 지나 1시가 넘어서 콜이 들어와 예약 장소로 이동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난, 당신 일 안 나가는 줄 알았지. 간식을 준비했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가져가지 않았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쉰다고 했잖아요?"

  "아무튼... 예약 손님 기다리고 있으니까 전화 끊읍시다."

  전화를 끊기가 바쁘게 손님이 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나쁜 놈..."

  "네! 어디로 가세요?"

  "나쁜 놈!"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

  손님은 대답 대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옆 좌석의 그는 정장 차림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며 5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주춤주춤 택시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그냥 시내 쪽으로 가 주세요."

  "......"

  "그놈이 죽었습니다. 자살을 했어요. 나쁜 놈..."

  그는 절친의 상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흘 전, 사업에 실패한 친구가 자살하였다고 했다.

  친구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요식업과 유흥업을 겸했는데 체인점을 낼 정도로 번창하던 사업이 코로나 시국을 맞아 어려움에 부닥쳤다. 전 재산을 팔아 체인점을 살리고 빚더미에 오른 그는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생목숨을 끊었다.

  "이젠 위드 코로나 시대도 열리고 했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회생의 길도 있었을 텐데요, 왜 목숨을 끊었을까요?"

  "제 말이요. 그 친구는 사업 수완도 좋았다니까요. 50대 중반이면 아직 한창 나인데... 왜 죽습니까? 나쁜 놈이지요. 남매를 서울대학과 일류 대학에 보내 놓고."

  "코로나가 뭐라고 가정의 기둥뿌리를 뽑고 가정을 해체하고..."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요. 나쁜 놈 하나가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나라가 흔들려서는 안 되는데 말이에요?"

  "......"

  "......"

  그는 목적지에 도착한 후 눈가의 눈물 자국을 옷소매로 닦았다.



사나이 평생 세 번

운다고 배웠는데

코로나 시국에

사업 엎은 후

생목숨 끊고

훠어이 훠어이 떠난

나쁜 친구 놈 때문에

네 번 울 수밖에 없었다

                 -<귀로>

  


  집에 오르자 억이 혼자 아는 체를 한다. 대여섯 시간 전만 해도 핥고 비비고 죽고 못 살던 복실이의 흔적은 없다. 아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제집으로 돌아간 듯하다. 뜨겁게 신방을 차리기 전까지는 잠시도 떨어질 줄 모르던 그들이다.

  더웠던 사랑의 결실, 그들의 2세가 세상에 올 수 있을까? 중년을 넘어가는 우리 억이가 과연 씨앗을 품었을까?

  사람이 죽고 사는 것까지 하늘의 뜻이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지구인이 저들이 사는 지구를 괴롭혀 몸살 나게 해 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구름 없는 하늘에 비를 바란다면 이건 될 말이 아니다. 코로나를 스스로 불러놓고 백신 하나로 막으려 한다면 될 말인가?

  바람이 저만치에서 오는 듯한데 우수수 낙엽이 진다. 복실이 떠난 억이 집 근처에서 낙엽이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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