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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May 15.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할머니 닭의 비상飛翔

이야기 열여섯

         할머니 닭의 비상飛翔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고등어 굽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에서 깬 건 훨씬 전이었지만 이런저런 공상에 젖어있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는 않고 있던 터였다. 토론 수업 준비와 하루 남은 원고 마감에 압박감이 이만저만 아닌 상황이다.

  장날인지라 시장에 다녀온다는 아내. 그녀가 떠나기 전에 밥상 앞에 앉는 게 뭣 하나라도 더 얻어 건질 수 있겠다 싶어 천근만근 몸을 일으켰다. 안방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솨아, 바람이 밀고 들어온다. 우리 침실을 먼저 훔치려는 도둑고양이라도 되는 양 앞다투어 밀어붙인다.

  아침은 상쾌했다. 상념에 잠겨있던 조금 전까지의 머리를 아침 공기가 씻고 간다. 달다. 앞산 생강나무가, 발품 팔지 않고 꽃 소식을 얹어 보낸 듯. 산골 늙은 벚나무의 사랑도 저처럼 달까?

  자글자글 고등어는 그의 몸을 불살라 주인 밥상에 오르기 위해 갖은 교태를 연출한다. 좋아하는 주인의 구미를 당기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고등어가 고맙기 그지없다. 고등어 한 토막만 해도 밥 한 그릇 거뜬한데 냉장고의 밑반찬이 총동원되고 황태 미역국까지 대령되어있었다. 차 시간에 쫓긴 아내는 밥상머리를 먼저 떴다. 안동 식혜에 고명으로 얹을 땅콩도 사야 하고, 시장에 가면 뭣이라고 건진다는 아내는 장날이면 저렇게 들뜨곤 한다. 어제저녁부터 장날을 꼽고 있었다. 봄을 죄다 담아올 기세이다.

  뒤꼍으로 나섰다. 몰래 오진 않았지만 봄이 불러낼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간 늙은이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스스로 봄 마중 나서는 게 슬기롭다. 나이 들면서 터득한 지혜이다.

  젊은 참새들은 진작 나와 자두나무에서 딸기나무로 재빠르게 난다. 참새들은 딸기나무 가시쯤은 새발의 피인가? 선택받지 못한 꽃다지와 냉이는 꽃대를 밀어 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노부부 밥상에 올라 짙은 향내 주지 못한 아쉬움을 2세 탄생에 올인할 태세로.

  돋을볕이 선돌 언덕을 반쯤 점령할 때까지 닭들은 기침 않았는지 조용하다. 나이 탓일까? 어제 얻어먹은 모이가 모이주머니에 차 있는 걸까?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편찮다. 문지방을 넘나들기가 힘겨웠다. 어제도 내 도움을 받아 닭장에 들었다.

  그들 나이 일곱 살. 사람 나이와 비교하자면 10년을 곱하기하면 된다. 내 나이와 비슷한 일흔 즈음이다. 할머니임이 틀림없다. 겨우내 쉼을 하던 그들이 새봄과 함께 이틀에 한 개꼴로 알을 낳고 있다. 아무리 할머니지만 모이를 주는 주인을 향한 보답인지. 할머니 닭들에 고맙고 미안하다.

  노환인 닭의 회복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여의치 않을 듯. 지금까지 노환의 기미가 있던 닭이 회생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2년 전 유일한 그녀들의 배우자였던 수탉도 그렇게 먼저 떠났다. 암탉들은 슬픔을 말로 하지는 않았다. 싫다는 암탉을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아내는 시장에서 봄을 데려왔다. 풋나물도 사 와서 저녁에는 애호박 총총 썰어 넣고 된장 끓여 봄을 비볐다. 큰애 가졌을 때 그렇게 먹고 싶었다던 딸기도 데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게도 사고 알 땅콩은 넉 되나 사 왔다.

  드라마 마지막 회가 끝나고 나자 아내가 볶은 땅콩 고명 얹은 안동 식혜 한 그릇을 안긴다. 묵시적으로, 얼른 먹고 나가서 쓴 만큼 벌어올 것을 암시하듯.



봄이 온 줄 어찌 알고

우리 암탉 알을 품을까?

목련꽃망울

터뜨릴 줄 어찌 알고

볏만 화려한 수탉과 그제

뜨거운 밤 거절했을까?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우주를 품고 앉은 그녀.

20일 후 노란 병아리,

그 어미 희생 알기나 할까?

눈만 껌벅이는

암탉 하얀 머릿속엔

삐악삐악 쿵쾅쿵쾅

아가의 심장 소리만 들릴 뿐.

              --<암탉의 노란 꿈>



  시골길을 한참 더 가야 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내가 먼저 입을 뗐다.

  "귀촌하셨습니까?"

  "아, 네. 귀촌이랄까, 귀농이랄까? 둘 다 아닐 수도 있고요. "

  "역시 그랬군요. 시골 분은 아닌 것 같았어요."

  "시골 땅이 조금 있어서 옛집을 수리해 농사철에만 저 혼자 고향에 머물러요. 오늘은 옛 친구를 만나 술 한잔했습니다. 와이프는 죽어도 시골에 오지 않겠다고 하네요."

  내 또래인 듯했다.

  "혼자 계시면 불편하지 않으세요? 밥해 먹는 것도 그렇고요?"

  "이웃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요, 지낼만합니다."

  "......"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좋아요.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우리 마을에 큰 형님뻘 되는 여든넷 할아버지가 혼자되어 고향에 돌아왔는데 바람이 났어요. 몇몇 할매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그중의 여든둘 할매와 읍내 여관에 들른 게 들통났어요. 경쟁자였던 할매의 폭로로 동네가 왈칵 뒤집혔지 뭐예요"

  "재미있군요. 여든이 넘었다고 사랑을 못 할 건 없잖아요?"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 형님도 당당해요. 여관에 드나든 게 한두 번이 아니란 걸 인정했어요. 가관인 건 자식들한테 결혼 안 시켜 주면 죽어 버릴 거라고 협박까지 했다나 봐요."

  "대단한 사랑이군요. 그 할아버지 잘생기셨나 봐요?"

  "그렇지도 않아요. 그 연령대의 보통 할아버지세요. 이번 주말에 그 형님 생신인데 자식들이 함께 모여 가족회의를 한다고 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저도 궁금합니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돌아서는데 수탉이 길게 목을 뽑는다. 자정도 안 되었는데. 저 닭은 시계도 안 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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