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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Jun 05.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파란 나라

이야기 열아홉

            파란 나라

                고재동(택시 기사ㆍ시인)


  닭장으로 가는 길은 푸른 오월이다.

  째째짹, 휘리릭.

  올봄까지 시집가려다가 오미크론 앞에 좌절된 자두나무 숲 속. 스며든 참새가 인기척에 놀라 이웃 나무로 난다. 아기 새가 뒤따르며 파랗게 운다. 날갯짓도 푸르다.

  "나도 따라갈래."

  병아리를 더 사달라고 하던 솔이가 따라나섰다가 마당에서 동생들과 휩쓸리며 논다.

  가족 주간을 맞아 20여 일 집을 비웠던 저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두 모였다. 객식구 열셋. 아이들 내외 여섯과 손주 일곱. 집이 떠나가려는 듯 시끌벅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쥐새끼 한 마리 찍소리 들리지 않던 조용한 선돌길 언덕이었는데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인근에 사시는 어머니와 동생까지 식사 시간에 합류하다 보니 열일곱까지 온도가 상승했다. 지난 설만 해도 인원 제한에 걸려 시차를 두고 모였기에 다 같이 자리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새로 지은 서재 방을 거처할 수 있게 되어 한숨 돌렸다.

  한 살에서 여든일곱까지. 4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잔칫집 분위기와 흥이 절로 난다. 마당에는 풀장과 천막, 거실엔 에어바운스가 설치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풀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무대를 옮겨 에어바운스에서 뛰고, 어른들은 불멍 때리기에 돌입한다.

  하늘에선 총총 별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아이들도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신기해했고 하늘에 저처럼 많은 별이 떠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하늘에도 새 별이 뜨고 선돌길 언덕에도 새 별이 떴다.

  적막할 땐 어차피 안을 수밖에 없었던, 그걸 즐겼는데 별들의 재잘거림에 섞이는 재미도 가히 즐길 만하다.

  흥에 취해 까딱하면 닭을 뇌리에서 지울 뻔했다. 늦게 모이를 들고 나타난 주인을 원망하며 닭은 벌써 횃대에 올라 잠을 청한다.

  오월이 가정의 달이라는 사실을 닭들은 알까? 그들에게도 가정이라는 게 있을까? 분명 가족애는 있다. 사람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바뀌고 가족과도 생이별해야 하는 비운을 타고났긴 하지만. 할머니 닭 두 마리는 횃대에서 거의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밤눈이 어두운 닭인지라 모이를 취하려 내려왔다간 횃대에 다시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듯. 옆방의 병아리 다섯 마리는 구석에 옹기종기 몸을 비비며 수탉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배가 고팠던지 더듬거리며 다가와 모이를 쫀다. 보름 전에 수많은 가족에서 떠나와 다섯 마리가 의기투합한 듯하다.

  새 별은 여기저기서 뜬다. 하늘에서 뜨기도 하고 땅에서 뜨기도 한다. 땅에서 진 별이 하늘에서는 뜨고 하늘에서 진 별은 땅에서 다시 뜨기도 한다.



대구서 서울에서

손주들 온다기에

첫새벽 부산하게

이슬로 눈곱 닦고


왕자님

오시는 길목

다소곳이 앉았다


내 뜰에 홀로 앉아

동구 밖 내다보며

나비가 오시는 길

노랗게 닦고 있다


민낯을

분칠 하느

낮잠 한숨 못 드네

           --<민들레 개화기>



  "저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왜요? 우리가 클 때 비하면 얼마나 유복한데요?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요. 우린 명절 때 아니면 새 옷 한 벌 얻어 입지 못 했고 도시락은 이밥에 달걀프라이 하나 얹어가는 게 소원이었잖아요?"

  어린이날 저녁, 내 차를 탄 또래의 남자 손님이 느닷없이 우리나라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물질적으로는 매우 윤택해졌으니까, 북한 아이들이나 아프리카 아이들과 비교하면 잘 먹고 잘 살지요. AI 시대를 사는 이즈음 무슨 잘 입고 잘 먹는 게 대수겠습니까?"

  "......"

  "OECD 23개국 중에서 꼴찌라고 합디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나는 이때까지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만족도를 놓고 설문조사를 했나 봐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만족도, 행복감 쪽에서 23개국 중에서 23위를 했다더군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불쌍하다니까요."

  "아, 그런 조사를 했군요.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방과 후 학원을 몇 군데나 가잖아요. 집에 돌아오면 일고여덟 시가 보통이에요."

  "저희 손자도 학원을 몇 군데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옆집, 윗집, 아랫집 아이들에 뒤지지 않으려면 비싼 돈 들여 학원에 보내야 하나 봐요. 그것도 그렇고 부모가 퇴근해 올 때까지 싫어도 학원에 발 묶여 있어야 하는 딱한 사정도 있죠."

  "극성 엄마와 잘못된 사회 구조 때문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사육당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근본을 찾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대로 쭉 가다가는 우리나라 교육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사교육, 학원 교육, 학교 교육 전반에 거쳐 대수술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때는 학교에 갔다 오면 동네 또래들과 소 먹이러 가서 뛰어놀고 어머니, 아버지를 거들어 밭을 매기도 했지요. 차라리 그때가 좋았어요."

  "오늘이 어린이날 100주년이라고 하지요? 전국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더라고요. 프로 야구 구단에서도 어린이 팬들을 초청하여 비싼 선물을 주던데요. 그것만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일까요?"

  "......"

  손님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못했는데 내 택시는 목적지에 닿고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하늘을 봤다. 초저녁까지는 별이 총총했는데 옅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인지 흐릿하다. 그러나 동녘은 붉다. 해가 뜨려나 보다.

  서재 방 셋이 늘었는데도 내가 들 곳은 서너 평 황토방밖에 없다. 아내와 다퉜을 때와 아이들이 올 때마다 밀려나던 곳. 내 몸 하나 뉠 곳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거미와 동침하러 동틀 녘 나만의 보금자리에 든다. 두어 시간 후 아이들이 마당으로 몰려나와 내 곤한 잠을 깨운 들 대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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