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전쟁과 AI, 그 위험성은? -1-
학사, 석사, 박사 과정에서 나의 전공은 '산업공학'이었다. 산업공학은 다양한 세부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산업공학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최적화'이며, 이를 상징하는 대표 학문은 'OR(Operations Research)'이다. 내가 몸 담았던 연구실의 이름에도 최적화가 들어가며, 지도 교수님께서 담당하신 교과목이 'OR개론'이라, 해당 과목 조교를 수년간 한 경험도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OR은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용어이지만, 타 전공 분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한 줄로 간단히 이 학문을 설명하자면 복잡한 시스템을 수학적으로 분석해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OR에서 오퍼레이션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OR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살펴보자.
그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미국 전쟁부(전후 국방부로 명칭 변경)는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 모두 관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군수 물자들이 전장으로 보내져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효율화가 필수였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OR이다.
OR에서 'O'는 군사 부문에서 작전을 의미하는 'Operations'에서 나왔다. 군사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정부는 수학자, 과학자, 경영학자들을 대거 동원했고, 이들은 수학적 모델과 통계적 분석을 활용해 군사적 의사결정을 지원했다. 주로 활용된 분야는 군수 물자의 효율적 배분, 군사 작전의 물류 개선, 그리고 공중 폭격의 효과 최적화 등이었다.
특히, 폭격기 부대의 공습 효율성 분석을 담당한 사람은 훗날 아주 유명해지는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이다. 그는 UC 버클리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연소 조교수로 근무한 유능한 인재였다. 회계사이기도 했던 그는 2차 대전이 벌어지자 미국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하며, 폭격의 효율성 분석을 담당했다. 특히, B-29 폭격기 도입을 추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도쿄 대공습, 원자폭탄 투하 작전에도 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OR의 기법들은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활용되는 중요한 학문 분야로 자리 잡게 된다. 맥나마라 역시 전후, 포드 자동차로 자리를 옮겨 엄청난 경영 성과를 보이며, 1960년, 44세의 나이로 포드 가문 외 인사로는 최초로 사장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사장 부임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1961년, 미국의 케네디 정부에서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리고 1968년까지 국방장관을 역임하는데, 그 기간 동안 세계사의 굵직한 일들이 발발하게 되고 그는 역사의 주역이 되어 이들 사건이 흘러가는 방향을 컨트롤하게 된다. 맥나마라의 대표적 공은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를 해결한 것이다. 하지만 실수도 커서, 베트남 전쟁에 미군이 참전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여 훗날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그 역시, 자서전에서 베트남전 참전 결정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국방부 장관을 민간인이 한다고? 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경우 민간인만이 국방부 장관을 할 수 있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원칙에 따라 민간인이 군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취지이기도 하지만, 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업가나 교수 출신 민간이 자주 국방부의 수장이 되곤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바로 '효율성'이다. 전쟁과 국방에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국방은 효용성과 효율성을 반드시 따져야만 하는 분야이다. 국방부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인풋만 있고 아웃풋이 없다'는 점이다. 기업처럼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붓기만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미국을 '천조국'이라 부르며, 국방에만 천 조원 이상을 쏟아붓는다고 경외시 하지만, 미국은 언제나 국방 예산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효과를 내는 것이 국방부의 목표였고, 거기에 적임자가 바로 맥나마라 같은 경영자들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국방 예산을 효율화하고자 하였지만, 그럼에도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비싼 첨단 장비였다.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첨단 무기들이 어떤 위용을 가지고 있는지 똑똑히 봤다. 거대 방산 기업들이 독점했던 첨단 무기 시스템을 가지고 있느냐가 전쟁의 성패를 결정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고 있다. 고가의 전투기나 미사일, 전차가 아니라 저렴한 드론이 전쟁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개전 초기만 해도, 세계 2위의 군사 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쉽게 압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저가의 무인 드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러시아의 전차와 같은 군용 장비는 물론, 군사 시설과 사회 기반시설까지 위협하는 데 성공한다.
처음 드론이 활약한 것은 대전차전이었다. 개전 초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했다. 미사일 한 대의 가격은 약 2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억 7천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몸값이 비싼 미국의 대전차 미사일은 금방 저렴한 드론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우크라이나의 500달러(약 70만 원)에 불과한 무인 드론이 러시아의 탱크를 날려버린 것이다. 500달러의 드론에 피격된 탱크의 가격은 무려 200만 달러, 약 28억 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값싼 드론은 수백억에 달하는 러시아의 군함을 격침시켰으며, 최근에는 아래 영상과 같이 690억짜리 러시아의 Buk-M3 방공 시스템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저렴한 드론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론은 작고 가볍고 빠르다. 이는, 기존의 방공 시스템인 레이더로 탐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다양한 환경에서도 쉽게 운용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비싼 전투기나 미사일은 개발 비용도 많이 들고, 사용하기도 까다롭다. 하지만 드론은 저렴하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소위 말하는 '가성비 전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렴한 드론이기에 몇 기가 작전에 실패해도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게다가 드론은 무인이라 인명 피해도 없다. 공격 측 입장에서는 수십 대의 드론을 보내 한 대만 임무를 성공해도 가성비 측면에서 남는 장사가 된다. 100만 원도 안 하는 드론을 수십 대 보내 한 대만 적의 전차를 파괴해도 본전의 수십 배를 달성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본전이나 가성비라는 말을 쓰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전쟁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이제 드론은 주력 무기로 등극했다. 러시아는 전차를 뒤로 빼고, 보병이 앞장서고 있다. 총알받이 아니 드론받이로 말이다. 드론을 활용한 다양한 전술이 등장하고 있고, 드론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도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전쟁을 '운영'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비용과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다. 여기에 드론이 정확하게 부합한다. 고가의 첨단 무기 대신 작고, 싸고, 빠르게 움직이는 드론이 전쟁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드론은 공격하는 측의 인명 피해도 크게 가져오지 않는다. 이보다 더 적합한 무기가 어디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지 한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전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어떤 무기가 효율적 일지를 새롭게 정의해 나가고 있다. 이 변화는 국방부와 군사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기존처럼 최첨단 무기, 초고가의 무기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드론과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만, 최근 미 공군은 차세대 최첨단 전투기인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할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중단의 이유로 추정되지만, 드론과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뒤따른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무인 전투기로 방향을 완전히 틀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이 미국의 아파치 헬기를 추가 도입한다고 밝히자, 드론에 격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드론이 헬기 천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드론만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다. 여전히 미사일, 전투기, 전차가 함께 전장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과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는 전쟁터의 중심에 저렴한 무인 드론이 중심에 선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활용되는 드론은 무인이긴 하지만, 사람이 조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드론을 막기 위해 재밍(Jamming)이라는 전자전 기법이 활용된다. 재밍은 무선 신호를 방해하는 기술로 드론과 조종수간 통신을 방해하는 데 효과적이다. 러시아 역시 이 기술을 활용하여 우크라이나 드론을 막고 있다.
이렇게 방어 기술이 등장하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인공지능이 탑재된 드론이다. 전파 방해를 받더라도, 조종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목표물을 식별하여 지체 없이 공격에 나서는 AI 드론이 실제 전쟁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 AI 드론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최근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AI 드론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포함해, 오늘날 드론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총 3부작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인공지능 드론의 기술적 현황과 미래 전망,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제 의견을 피력했는데요. 제작을 담당하시는 분은 종군 PD로도 유명한 분으로, 이미 우크라이나를 직접 취재한 경험도 있으시다고 하네요. 저 역시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사전에 준비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글로도 나눠보고자 합니다. 4~5편 정도로 나올 것 같은데,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편에는 AI 드론의 현황이 소개될 것이고, 이후에는 이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다뤄볼까 합니다. (연속해서 드론 글이 올라가지는 않고, 띄엄띄엄 업로드 될 듯 합니다)
참고로 드론 관련 <EBS 다큐프라임>은 2월 방영 예정이라고 합니다.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