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EX 2025를 다녀와서
'K'라는 접두사가 붙은 모든 것이 히트다. K-POP부터 K-드라마, K-푸드. 그리고 K-방산, 한국의 방위 산업 역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의 방산은 최근 몇 년간 폴란드, 호주, 루마니아 등에 수조 원대 계약을 연달아 성사시키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만 수주 잔액이 100조 원을 돌파했으며, 유럽, 중동, 아시아 국가들과 방산 협력이 확대되며 2030년까지 방산 수출 규모도 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방산 4대 강국이 눈앞이다. 판매 품목도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육지의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과 천무, 바다의 장보고급 잠수함과 호위함, 하늘의 FA-50 경공격기와 아직 판매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가 만든 전투기 KF-21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ADEX 2025. 기회가 되어 방문한 ADEX 2025 야외 전시장에서 나를 반긴 건 자랑스러운 K-방산의 효자들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산 AI는 어떨까?
실내 전시장을 가득 메운 한국을 비롯한 해외 유명 방산 업체들은 하나같이 AI를 내세우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는 역시나 유인 전력과 무인 시스템을 하나의 팀으로 운용하는 MUM-T(Manned-Unmanned Teaming) 시스템이다.
이제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 군대의 가장 트렌드는 MUM-T(멈티라고 읽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F-47이라는 6세대 전투기를 발표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부분도 바로 MUM-T다. F-47과 무인 전투기의 편대 비행이 하늘에서 펼쳐지는 MUM-T라면, 이제는 땅과 바다에서도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 전장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MUM-T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인간 대신 로봇이 적과 최초 접촉한다.”
그리고 MUM-T의 핵심은 AI 기술이다. 단순한 원격 조종을 넘어 무인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진정한 팀워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 표적 인식, 자율주행, 경로 계획 같은 AI 기술들은 이미 MUM-T의 기본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자율 협업 알고리즘으로 아군 로봇과 인간 팀원을 조율하고 있다. 특히 파이어스톰과 같은 시스템에 내장된 AI는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있다. 인간의 인지 부담을 줄이고 결정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내 주요 방산 기업들, 한화, LIG 넥스원, 대한항공, KAI 등의 모든 부스에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부분이 유무인 복합 체계였다.
육지, 하늘, 바다 어느 곳 할 것 없이 중심이 되는 유인 무기 한 대가 무인 무기 여러 대를 거느리는 청사진을 국내 방산업체들은 제시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웅장해지는 장면이다.
사실 이번 ADEX 2025에서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방산 업체들의 AI 플랫폼이었다. AI 플랫폼 하면 가장 유명한 기업은 당연히 팔란티어다. AI가 전장을 바꾸는 이 모든 혁신의 중심에는 미국 기업 팔란티어가 있다. 2022년 6월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가 직접 키이우를 방문했다. 공습경보가 울리는 도시에서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제안했다. 자사의 AI 플랫폼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팔란티어는 2003년 CIA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데이터 분석 기업이다. 사명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팔란티르’, 멀리 떨어진 곳을 볼 수 있는 수정 구슬에서 따왔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전지적 시선을 가진 도구라는 의미다. 그들의 핵심 제품은 ‘고담(Gotham)’이라는 AI 플랫폼이다. 배트맨의 도시 고담 시티처럼 복잡하고 어두운 범죄 네트워크를 파헤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 시스템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해 숨은 패턴을 찾아낸다. 테러리스트 추적, 금융사기 적발, 마약 조직 색출에 활용되어 왔다.
우크라이나에서 고담이 하는 일은 간단히 말해 데이터 융합이다. 상업위성의 광학·레이더 영상, 드론 영상, 열화상 데이터, 지상부대 보고, 통신 감청, 소셜미디어 게시물까지. 서로 다른 형식의 수천 가지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한다. 여기서 핵심은 AI의 패턴 인식 능력이다. 고담은 컴퓨터 비전 기술로 위성사진에서 위장된 군사 장비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숲에 숨은 전차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AI는 나뭇잎 색깔의 미세한 변화, 비정상적인 그림자 패턴, 열화상 신호를 종합해 탐지한다.
팔란티어의 위력은 실전에서 증명된다. 2022년 가을, 우크라이나군의 헤르손 탈환 작전. 팔란티어는 40여 개 위성과 정찰 자산에서 24시간 쏟아지는 데이터를 통합했다. 러시아군 부대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보급 창고가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했으며, AI는 수천 개 표적 중 우선순위를 정했다. 이렇게 팔란티어가 분석한 정보는 델타를 통해 지도·영상 등의 인터페이스로 현장 지휘관에게 전달된다. 결과는 명확했다. AI 분석 결과에 따라 서방이 제공한 무기로 정밀 포격이 이어지며 러시아군 지휘소와 탄약고가 차례로 파괴됐다.
페도로프 디지털전환부 장관은 헤르손, 이지움, 하르키우 해방 작전에서 이 ‘디지털 킬 체인(digital kill chain)’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주요 시설이 파괴될 때마다 팔란티어의 데이터 연계 타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라면 수백 명이 며칠 걸려 분석할 정보를 이제는 클릭 몇 번으로 처리한다. 카프 CEO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 소프트웨어가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표적 선정에 이바지하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제한된 포탄 하나하나를 아껴 써야 했고, 팔란티어는 여기에 기여하게 된다. 영국 타임스는 팔란티어 AI가 우크라이나 포병의 정확성, 속도, 파괴력을 극대화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AI 플랫폼이 전쟁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한화, LIG 넥스원 등 다양한 방산 업체들은 AI 플랫폼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가 자체 기술이고, 어떤 기술을 외부에서 수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전을 기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한화, LIG넥스원, 현대로템, KAI 같은 주요 방산업체들은 AI 무기 체계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물론이고, 국방부 역시 AI 기반 지휘통제 시스템과 무인 전투 체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2025년 10월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를 직접 참관하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하는 거의 모든 무기 체계에 AI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ADEX 2025를 방문하게 된 건, AI와 전쟁을 엮어서 열심히 집필 중인 나의 네 번째 책을 위해서였다.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집필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이 사실 ‘K-방산과 AI’였다. 전현직 장성들을 비롯해 방산업체 관계자, 연구원들과 수많은 미팅과 자문을 거쳤다.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K-방산은 본문이 아닌 에필로그에서만 살짝 다루기로 하였다.
첫째, 기밀 사항이 많다. 구체적인 AI 성능, 운용 방식, 개발 진행 상황. 이런 것들은 당연히 공개할 수 없다. 둘째, 외부 관계자가 어중간하게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전문가들의 조언도 그랬다. 잘못된 정보나 과장된 평가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셋째, 이 책은 AI 전문가가 바라본 AI 전쟁의 글로벌 맥락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다. 다만 속도가 문제다. 조금만 뒤처져도 위험하다. 우리의 안보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민간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ADD와 대기업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소 방산 업체들, 스타트업들이 탄탄해져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250개 스타트업으로 드론 생태계를 구축한 것을 기억하자. 미국의 팔란티어나 안두릴 같은 AI 국방 기업들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 한국에도 그런 기업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이공계 엔지니어들, 특히 AI 개발자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무엇보다 비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민관군이 빠르게 협력할 수 있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AI 워페어> (가제) 초고를 드디어 넘겼습니다. 그 와중에 지난주 있었던 ADEX 2025 참관기를 써 봅니다. 기대도 되고 우려도 되는 AI와 무기의 만남입니다. 이제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고,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책은 이제 초고를 넘겼으니 늦어도 내년 초에는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