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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연 Apr 26. 2022

안동 가는 길

여행이라 최면 걸기

19년이란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가까운 친구이자 삶을 헤쳐나가는 동지, 내 아이들의 아빠라 불리는

남편과는 후회가 남지 않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첫 만남에서 느낀 그대로 우직함과 과도한 책임감

정 많은 마음 씀씀이까지 둥글둥글한 인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성격과 마음을 가졌다. 무용을 전공한 

감성주의자인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잔걱정이 많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성향이 있는 반면 공학을 

업으로 삼은 남편은 그와 반대로 시련도 행운도 늘 지나가는 파도와 같은 거라며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 덕에 예민하게 열려있던 나의 모든 감각들이 무디어지고 감정을 소비하는 일도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며 결혼초까지 스트레스성 부정맥 진단을 받은 지병까지 자연 치유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잔잔한 호수 마냥 평온함을 맛보던 나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긴 건 그가 안동 장 씨의 성을 가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거였다. 신혼 초에 한 달 간격으로 아버님에게 선물 받은 두 권의 책은 이문열 작가의 선택이었다.

그 작품의 주 내용은 안동 장 씨 가문의 현모양처로 칭송받는 정부인 장계향의 삶 이야기이다.  여성의 희생을 숭고하게 포장한 작품으로 페미니스트도 아닌 가치중립의 편에 선 나도 읽다가 중간에 멈춘 여성의 처절한 희생과 고단함에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 마음이 아린 삶이 나열된 책이었다. 작가의 문학성은 범접 불가 영역이었지만 나에겐 그저 고되고 숨 막힐 듯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행군하는 끝없는 전투를 이어가는 무명 병사의 삶으로 보일 뿐이었다. 며느리 어머니 아내의 이름으로 한 집안을 일으키고 후손을 훌륭히 성장시키는 이면 뒤에는 개인적인 쉼이나 멈춤 따위는 용납되지 않는 며느리라는 올무를 쓴 조선 중기 통념 불합리한 신념이 만든 고난의 개인사의 기록물일 뿐이었다. 그 책을 한 권도 아닌 두 권을 시간차를 두고 받는 기분은 의아함과 뭔가 억울함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그 의아함 감정은 한해 한해 가족으로 녹아들수록 풀리고 억울한 감정은 점점 최고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나마 가끔씩 보는 며느리 입장이지만 근접한 위치에서 고향, 조상의 공적, 가문, 제사, 혈육 이외는 

중요한 게 없는 시아버지의 부인으로서 50년을 살아온 어머님의 삶이 같은 여자로서 마음 아프고 뭔가

지금이라도 어머님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희생의 세월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어머님은 여고 동창회에서 가는 여행은 외박이 용납이 안 되는 탓에 동행한 적이 없다.

오후 6시 넘어서 귀가하는 외출은 극히 드문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압의 시간들을 보내셨다. 

어머니의 딸과 아들이 반기를 들어도 고함과 히스테리 며칠이면 집안의 평화를 위해 어떠한 변화도 없이 없던 일이 되는 진짜 조선시대 집안 여자를 단속하듯 그런 숨 막히는 구속과 억압을 아버님은 고수하셨다. 뼛속까지 고착하된 본인이 옳다는 신념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어머님은 그런 결혼생활 내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본인의 희생을 택하신 듯했다. 우리 세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어머님 세대는 불행히도 그런 삶을 택하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을 가진 외부인 신분인 나는 남편에게 어머님의 지금까지 희생과 아버님의 불합리한 강요와 일방적인 지시만 있는 어머님을 향한 잘못된 관계를 계속 이야기했다. 

남편도 청년 시절 아버님의 어머님에 대한 억압에 반기를 들고 몇 달 회사 기숙사에 거주하며 절연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님의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아내와 딸을 동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 그런 행태는 절대 변하지 않고 세월이 지날수록 본인의 위치를 지키는 안전장치 인양 더 굳건하게 쥐고 흔들어댔다.


그런 숨 막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내가 보는 상황마다 잘못된 부분을 수집하여 남편에게 전하고 아들에게는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 아버님의 습성을 파악하고 남편을 방패막이 삼아 수시로 

어머님 입장을 남편의 입을 빌려 전하고 자식들이 어머님을 아버님 앞에서 더 친밀하게 극진하게 대해드렸다. 수십 년을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살아오신 덕에 단숨에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어머님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지고  장성한 자식들에게 둘러싸인 어머님을 보시는 아버님은 조금씩 본인 위주의 생각과 요구사항을 

주저하며 강도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갈길이 멀고 변화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머님의 쌓였던 억울한 세월이 조금씩 치유되고 가족들의 

지지를 비축해서 아버님께 본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굳건하게 가질 수 있기를 응원드린다.

어머님이 작은 목소리라도 내면 아버님이 보란 듯이 감정을 휘두르던 자식들도 이젠 그 집에 없고 어머님을 

이해하고 지지를 보낼 가족들 있으니 살아온 세월의 반도 안 남은 남은 세월이지만 희생과 억울함 없이 

하루하루를 맞으시기를 바란다. 


곧 다가올 5월에는 아버님 고향 안동을 가기로 계획했다. 그 지역만은 가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 안동 방문은 앞으로 어머님을 위한 작은 계획에 앞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여러 여자 형제 중 한 분만 남으신 미국 이민 가신 이모님께서 조만간 한국을 방문하실 계획이시다. 어머님과 이모님 두 분 만의 여행을 계획 중인데 

아버님은 분명 본인도 동행하려 하시든지 아님 여행 생각이 쏙 들어가게 심술을 부리실 것이다. 

그전에 아버님의 고향 방문으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얼마 전 안동 여행을 빌미로 삼을 것이다. 이모님과의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서 정말 나는 원치 않는 안동 지역에 간다. 이동 내내 19년 내내 들어서 이야기 순서와 인물 이름까지 기억하는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어머님과 

이모님의 제주도 여행을 위해서 버텨보려 한다. 다행히 봄볕에 절반 이상은 꾸벅꾸벅 조는 시간이 채워줄 것이니 다행이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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