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부심

2001. 열한 살

by 글멍

요즘 흔히들 말하는 MZ세대 중에서 M밀레니엄 세대는 Z세대에 비해 빈부격차가 크지 않았던, 다들 사는 게 어렵고 힘들지만, 또 열심히 살아가고, 생활수준이나 환경이 고만고만하고 비슷했던 시대였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나의 백그라운드 시골마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방영이 종료된 '지금 우리 학교는' 좀비물 드라마에서 '기생수'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기초생활 수급자의 줄임말이었다. 티엠아이로 긍정적인 줄임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 줄임말마저 참신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줄거리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학생은 한 여학생으로부터 의도가 뚜렷하게 담긴 '기생수'라는 억양부터 날카로운 말을 듣고, 자존감에 굉장한 상처를 받은 듯한 장면만 얼핏 기억이 난다.


라떼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학급의 3분의 1 정도가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어떤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가볍게 정보를 조작하기도 했다. 나 또한 아버지의 급여 수준을 20% 정도 다운시켰으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분기별로 우유 한 박스를 탈 때는 동네에서 나름 큰 행사였던 걷기대회에서 상품 타듯이 몇몇 친구들한테 우유 한 개씩 나눠주며 기쁨을 공유했다.


철없던 시절, 가난함으로부터 얻는 물질적인 혜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는 '깨달음'을 얻은 듯, 남들보다 가난함을 어필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유독 친구들끼리 나눈 대화가 그러했다.


"우리 집은 사글세야, 너희 집 보다 우리 집이 더 힘들어."

"야, 우리 집은 빚이 1억이야"

"우리는 치킨도 잘 못 시켜먹어"


집안의 재정이 어떠한지 부모님 어깨너머 얼핏 들은 부실한 정보력은 친구들을 거쳐 자기중심적인 정보가 되어, 스스로 경제적으로 도태되기를 자처하였으며, 그중에서 나 또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도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나의 고정적인 멘트는 " 우리 집 화장실은 푸세식이야." 였는데, 실제로 사글세를 살면서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 10년간을 고생했다.


오물이 섞인 냄새며, 각종 벌레, 특히 구더기...


서른이 넘은 시점에서 생각하면 구구절절한 사연 못지않은 일화임이 분명한데, 유년기 시절에는 왜 그렇게 가난한 자부심을 내세웠는지, 이따금씩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 있는 인물이 가난했던 가정사로 인해 내적인 아픔을 호소하는 모습을 접할 때면, 상반되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돌이켜 보면 철이 없었을 뿐, 사실은 나 또한 생활의 결핍이 힘들었을 것이다.


경계선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Z보다는 M밀레니엄 세대에 근접한 세대이니까 나뿐만 아니라 다들 힘들게 살았던 세대니까 비록 형편이 어려웠어도 가난한 자부심이라도 내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합리화를 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십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