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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Oct 13. 2023

40대 후반의 암환자 결혼하다.

1. 리허설 같은 결혼식

"결혼 같은 게 아니라, 결혼한 거야. 우린."

남편이 말했다. 그래 나는 결혼했다.

4기 암환자인 내가, 40대 중반도 넘어선 내가, 드디어, 했다. 결혼이라는 걸.


그를 처음 만난 날, 벚꽃비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폐허가 된 그 집,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흑백화면 속 그 집에 오직 벚꽃만이 살아 내 머리로, 내 어깨로, 내 손바닥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얼마 전 우연히 이런 글을 봤다.

"나의 장래희망은 연애다. 그러니 아직 괜찮다." 사랑을 통해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 (고정순 '안녕하다')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막연하게 내가 바랐던 나의 꿈은 나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하와이나 유럽 여행이었다. 꼭 해보고 싶지만 이생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한 것들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욕심이 아닐까 싶던 일이 일어났다.


여행메이트로 스냅사진이나 찍자 했던 장난스러운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의 손에-3000원짜리 이미 변색된-스테인리스 반지를 끼워주었다. 반지처럼 장난스러운 결혼식 내내 나는, 내 눈이 가닿는 위치에서 보이는 주례할아버지의 수북하게, 정갈하게 코밖으로 삐져나온 하얀 코털만 바라보았다. 'Love is...' 사랑은 그런 거고 사랑은 그러지 않는 거랬다. 리허설인 줄 알고 진행한 결혼식 후에는 서로 서명까지 한 정식 결혼서약서를 받았다.


7년 전 암 선고를 받고 당당하게 비혼을 선언했었다. 한 번도 비혼주의였던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훌훌 떠날 수 있으니, 마음 한조각이라도 남겨두지 않을 수 있으니.


작년 말부터 올초까지 지인 여럿을 잃었다. 백혈병, 혈액암, 폐암, 심지어 자다가 심장마비로, 그들은 떠났다. 나보다 한두 살 어리거나 고작 서너 살 많은 이들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모두 건강한 사람들이었는데 갑자기 떠나버렸다. 남은 건 '곧 보자.'는 지킬 수 없는 부질없는 약속뿐.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M의 부고를 들었을 때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운동과 등산으로 단련된 M이 갑자기 작년 1월 백혈병에 걸렸다고, 마지막 항암을 끝내면 12월이니 봄 즈음에 보자 했다. 항암 중에도 기력을 회복하면 언제든 보자고 약속했지만 M은 좀처럼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가곤 했다. 각자 응급실을 통해 입원 후 했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M이 떠났다는 소식을 진해를 가득 메운 벚꽃 속에서 전해 들었다. 봄에 만나자더니 벚꽃 피는 계절에 떠난 M을 잃고나니 그가 생각났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나중'은 없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을 때 봐야 한다.


오랜 기억을 뒤져 그를 만나러 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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