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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Oct 14. 2023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세요?

2. 바람이 불어오던 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언젠가 한번 가봤던 곳,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그 집은 생기를 잃은 공간이었다. 마당엔 오래 타지 않아 망가진 것 같은 낡은 자동차 한 대가 먼지에 묻혀 있었고 오래 깎지 않아 머리가 긴 잡초들이 가득했으며 구석엔 사람의 온기를 느낀 지 오래되었을 휠체어가 쓰러져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았다면 그대로 돌아 나왔을 거였다. 바람에 벚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은 것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 죽음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이라니, 신기하고 신비하여 한참을 바라보던 차에 현관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동시에 밖을 향해 백구가 우렁차게 짖어댔다.

"영원이라고 합니다."

잔뜩 긴장해 있던 그의 얼굴에서 경계가 사라졌다.

나도 너를 알고는 있다는 표정을 짓더니 밖으로 나왔다. 그게 P, 지금 내 옆에 있는 내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다.


몇 년 전부터  P를 알고 있었다. 발병 후 가입한 카페에서 그의 닉네임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의 글을 정독해 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끌렸었다. 약을 먹으며 내 상태가 호전되어 가면서 카페에 발을 끊었고 그도 잊었었다. 그러다 그에게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가 자꾸 생각났다. 잘 지내는지, 아니 지내고 있는 건 맞는지, 가끔 카페에서 그의 글을 발견할 때면 안도했다. 살아있구나 싶어서.  


P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깡마르고 왜소한,  마치 그가 머물고 있는 그 집 같은 사람이었다.  살아있는데 산 것 같지 않은, 흔히 말하는 산송장 같았다. P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내 근처로 왔다. 나는 말하는 내내 P의 옆얼굴만 보았다. 얼마나 오래 깎지 않은 건지 얼굴 반을 가린 머리카락, 바람에 날려갈 것 같은 마른 몸, 낡은  트레이닝복에 원래 흰색이었을 검은 운동화.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세요?"

진심으로 궁금했다.

며칠에 한 끼 겨우 먹는데 지인이 찾아오거나 보내준 것들로 연명 중이라고, 겨울 내내 보일러도 안 켜고 지냈다고, 곧 일을 시작할 거라고, 여행도 갈 거라고, 그리고 나의 병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 했다.

내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먼 산만 쳐다보며 30분가량을 선 채로 이야기했다. 대화라기보다 일방적으로 그가 말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람과의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그랬다고)


이름도 연락처도 모른 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돌아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내 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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