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끔 웃었다. 웃음소리가 참 이뻤다.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나랑 있을 때 웃는구나 싶었다. 그는 점점 밝아졌다.
"귀엽네요. 언제부터 그렇게 귀여웠어요?"
"날 때부터?"
뻔뻔해졌다. 귀엽다, 그래도.
세 번째 밥을 먹던 날, 밥을 먹고 차를 먹고 또 밥을 먹고 그를 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왔다. 하루종일 앉아 고개만 끄덕였더니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소화가 안되어 늘 답답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길은 늘 시원했다. 청개구리 아들, 손자, 며느리가 우렁차게 울었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속초에 다녀온 후 우리는 매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는 당보충을 하겠다며 늘 바닐라라테를 마셨다. 장어를 먹고 베트남쌀국수를 먹었고 솥밥과 해신탕을 먹었다. 하필 장미 만발한 에버랜드에 놀러 가 전국에서 체험학습 온 중고등학생들에 떠밀려 놀이기구는 하나도 못 타고 대화만 나누었다. 그는 내게 소소한 선물을 했고 매일 톡을 했다. 우리는 매일 만났고 비는 시간 없이 새벽 두 시까지 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은 점점 가벼워졌고 유쾌해졌다. 스물몇 살 그때 애니콜로 연인요금제로 밤새 대화했던 것처럼.
나이는 먹어도 연애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같은 설렘은 그렇게 다가왔다.
"걱정이 있어요."
그리고 그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자꾸 가슴이 간지러웠다. 마흔 후반에 봄바람이라니, 두 번 다시 이런 감정은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자꾸 마음 한편이 간질거렸다. 나는 인내심이 없다. 기어이 못 참고 먼저 말을 꺼내고 말로는 차마 묻지 못하고 톡을 보냈다.
'여행메이트 이상으로 정들까 봐 그러지.'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실은 자기도 얼마 전부터 그런 맘이었노라고, 이런 글을. 써두었지만 보내지 못했노라 답했다.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너무 편하고 좋아.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욕심이 많이 생기기도 한다.
살면서 가장 먼저 깨닫고 배운 게 참는 거였는데 가당치도 않게 욕심이라는 게 생긴다.'
그리고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부터 우리의 1일은 시작되었다.